좋은 쌀
좋은 쌀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3.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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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어느 해인가 극심한 가뭄으로 폐농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해에 우리 집도 대부분 반으로 토막이 난 싸라기 쌀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그런 밥을 너무 맛없어하던 우리에게 어머니는 그나마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라시던 말씀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어머니께서는 좋은 쌀은 농사가 잘되어 모두가 실하고 쪽 고른 쌀이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학교에서 한자를 배울 때 선생님이 `정일할 정(精)'이란 한자를 풀이해 주면서 “정일하다는 말은 곧 쪽 고르다는 말과 같다”고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공직에서 퇴직하고 시골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분과 이야기 중에 “사과나무에 큰 사과가 많이 안 열렸네요. 큰 사과가 많이 열려야 수입이 많으실 텐데요.”라고 했더니 그분 하는 말씀이 “사과는 먹기에 적당한 크기로 일정하게 키워야 농사를 잘 짓는 농부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운동할 때도 모든 팀원들이 골고루 잘해야 강한 팀이 되어 상대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한두 명만 잘하는 팀은 결국 상대를 이길 수가 없기에 다른 곳에서 조금 더 잘하는 사람들을 데려와 보충하거나 못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훈련시켜 실력을 향상시키기에 총력을 다 합니다.

요즘 많은 지도자가 서로 온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야심 찬 포부를 내보이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도록 해 주는 분이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에 있는 분들이 고루 사람을 잘 키우고 가르쳐서 모두가 능력자가 되어 잘되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해 준다면 그런 나라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나라, 와서 살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두 개의 커다란 사과가 열리면 그 나무에 달린 다른 사과들은 대부분 볼품없는 작은 사과가 된다는 사과농부의 말을 공직에 계시는 분들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은 자신을 대신해 일해 줄 사람을 뽑아 그 일을 맡기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곧 공무원이고 정치인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공인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잘나거나 똑똑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공인이 있다면 그는 크게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를 자신의 사익을 챙기는 자리로 알고 일을 처리하기에 공인으로는 적당하지 않을뿐더러, 오래 머물수록 국민에게 해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인들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우리나라에 사는 국민 모두는 다 존엄한 사람들이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귀하게 여길 때 우리의 삶은 존귀해지고 어디 가나 자부심이 넘치는 당당한 국민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사람이 다 귀한 존재라는 전제하에 서로 존중하고 아껴준다면 그런 가정이나 직장은 번영할 것입니다. 한두 사람만 잘살거나 소수 기업만 잘되는 나라를 만들어서는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업이 다 잘되고 모든 사람이 쪽 고른 삶을 살아야 선진국일 것입니다. 이런 나라는 누구 한두 사람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거나 생각이 같지 않다고 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모두가 다 고르게 잘 사는 나라, 모두가 다 존엄한 존재로 존중받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주위에 계시는 모든 분들을 우리가 먼저 존중해주고 함께 손잡고 고락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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