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
변해야 산다
  • 김은용<청주시 감사관>
  • 승인 2017.03.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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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52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의 2016년 우리나라 성적표다.

대상 국가는 176개국이며 전체 대상국의 30%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조사에서 37위였으니 15단계나 급전직하한 순위다. OECD 회원국만 대상으로 했을 때도 전년도 27위보다 두 단계 떨어진 29위이며 아시아·태평양 국가 26개국 중에서도 2단계 하락해 9위를 차지했다.

아·태지역 국가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은 물론이고 부탄, 브루나이 등도 우리보다 위에 있으며 우루과이, 칠레, 보츠와나, 르완다 등도 공공부문에서의 부패인식이 우리보다 낫다.

조직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부조리는 어디에나 있다. 부조리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진대 조직구성원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리'를 지키고 산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편으로 구성원 대다수가 부조리한 조직이라면 그 또한 정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직적인 부조리는 바로잡아야 마땅하고 당장 아픔은 감내하고 도려내야 이치에 맞는 일이겠다.

왜 이런 조직적 부조리가 발생할까? 비용과 편익이 모두 제로에 수렴하는 사소한 일이라면 우리는 부조리를 눈감고 버텨낼 수 있다. 합리적인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비용편익 관점에서 의미가 없는 일임에도 조직이 그런 부조리를 안고 있다면, 그것은 보통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조직의 90%에 달하는-필부필부들이 `사소한 일이라는 이유로 동조'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강화된 청렴의식에 견주면 사소한 부조리는 그 자체로도 문제다. 게다가 비용이 줄어들거나 편익이 늘어난다면 부조리의 규모는 커지고 행태는 고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소한 부조리라도 막아야 하는 이유이고 관행적이고 조직적인 부조리를 뿌리 뽑아야 하는 이유다.

개인의 청렴성과 관련한 조선시대의 일화가 있다. 대략 5세기 전 중종은 연산군 시절로 인해 혼탁해진 신료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궁궐안에 청문(淸門), 예문(例門), 탁문(濁門)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대신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청문, 보통 사람은 예문,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탁문을 통과하도록 했다고 한다.

청문으로 들어가긴 부담스럽고 탁문으로 들어갈 순 없으니 당연히 대부분의 조정 대신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예문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당당히 청문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소문난 청백리 `조사수'다. 더구나 이를 본 대신들 중에서 어느 하나 그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있다면, 그토록 자신 있게 청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오늘날 공직에 있는 사람 중에서 자신 있게 청문으로 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다.

떳떳하고 밝은 세상을 만드는 데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고위관료의 큰 부패나 미관말직들의 소소하지만 조직적인 부패 모두 동시에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이를 위해 조직과 개인 모두가 각성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염원하는 깨끗한 공직사회는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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