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바꾸기
마누라 바꾸기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3.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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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거기엔 빨갱이, 전우, 죽창, 돌격 같은 살벌한 단어들이 즐비했다. 우연히 들여다본 박사모 카페 풍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전쟁 같은 사랑. 2017년의 봄이 되었건만 그들은 여전히 6.25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간혹 이들의 애국심을 거스르면 여지없이 다구리가 날아든다. 처음 알았다. 노인들의 온라인 다구리가 젊은 조폭의 주먹 못지않게 맵고 모질다는 것을. 다구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뗀 채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들의 관점에선 나 역시 빨갱이니까.

「확증 편향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거나 평가절하 하려는 심리를 말한다. 한마디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나타나는 보편적 성향이지만 박사모 같은 극우단체의 편향성은 수위를 한참 넘어 우려스럽다. 이들은 8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박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다는 식의 가짜 뉴스를 주로 본다. 사실 여부나 출처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리 진짜 뉴스를 보여 줘도 이들에겐 빨갱이들의 좌익선동에 불과하다.

이십대 후반에 가장이 되어 참으로 우직하고 성실하게 마누라와 싸웠다. 살면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한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세상에 대한 아내의 관점을 내게 맞추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십년 이상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이제 조금 알겠더라. 불가능의 영역 중의 하나가 마누라 바꾸기라는 것을. 나와 다른 환경에 25년이나 노출된 인격체를 내 쓰임에 맞게 개조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오만했던가.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의 언어를 밀어내기만 했으니 아내와 나도 확증 편향성에 갇혀 있었던 거다.

극우세력의 탄핵 거부 몸부림과는 별개로 대선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대선 주자들이 국민 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건다. 탄핵 인용과 기각으로 양분된(8대2 정도니 엄밀히 말해 양분은 아니다) 국민을 한데 뭉치겠다는 건데 시쳇말로 흥칫뿡이다. 확증 편향성에 갇혀 남의 말을 절대 들으려 하지 않는 극우세력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이며, 애국에 대한 그들의 타는 목마름을 어떻게 적셔 주겠다는 건지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맹세컨대 이건 마누라 바꾸기보다 이천 배는 더 어렵다.

욕설과 폭력을 예사로 일삼는 작금의 극우세력을 포용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똘레랑스(tolerance)는 타인의 종교나 사상, 풍습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개조를 강요할 수 없다는 다원주의적 개념이다. 하지만 똘레랑스가 나와 다른 모든 걸 인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저들의 난폭한 아집도 포용의 대상은 아니다. 따라서 극우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와 지탄이 다양성에 대한 부정이며 정치 탄압이라는 저들의 억지 주장 역시 흥칫뿡이다.

이번 탄핵 국면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변수가 없다면 장미가 필 무렵에 극우세력이 빨갱이라 부르짖던 진보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론 통합을 이유로 극우세력을 함부로 껴안지 않기를 바란다. 죽어라 싸워 봐서 아는데 마누라는 결국 남편 하기 나름이더라. 우직하게 가장의 책임을 다하면 교언으로 영색하지 않아도 아내는 남편을 믿고 따른다. 그러니 어쭙잖게 통합하려 애쓰지 말고 국정을 잘 다스려 저들의 편협하고 강퍅한 마음이 자연히 펴지도록 하자. 때로는 방임이 최대의 관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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