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내려놓으시게
그만 내려놓으시게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7.03.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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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권진원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오던 촛불의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20회의 촛불집회로 1600만명이 넘은 시민이 한목소리로 외치던 구호가 실현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하였습니다.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문 낭독을 들으며 처음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가 언급될 때에는 `어! 이거 기각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재단설립, 인사개입 등이 언급되면서 `휴, 그래야지'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재판관이 차분하게 선고문을 읽고 마지막 주문을 낭독하며 “파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길고 길었던 터널의 끝을 보는 듯했습니다. 사실은 이 헌재의 재판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용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기각을 확신하며 축하를 위한 5단 케이크를 준비했다는데 참 상식이 무너진 사회라지만 설마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더욱이 재판과정 중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변호사들도 이번 탄핵인용에 빠져서는 안 될 일등공신들이었습니다.

시민의 승리, 촛불의 승리로 대변되는 이 심판선고는 이제 적폐를 청산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젠 그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의 말을 할 것이란 기대를 하며 헌재의 판결까지 나온 입장에서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도 없는데 `버티어서 뭐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듯이 삼성동 사저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파면된 대통령의 얼굴 어디에도 미안하거나 죄스런 낯빛이 없고 얼굴에 만연한 웃음으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입장을 표명하고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과 그로 인해 실망을 안겨 드렸음에 용서를 청하는 한마디 말도 없이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서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는 숨은 뜻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처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재의 파면 결정이 있던 날 자신을 지지하고 탄핵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던 중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생겨난 입장이었다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지녔던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불미스런 소식에 대해 미안함의 어떤 표현도 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지거나 불만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지자들의 죽음에서조차 침묵한다는 것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기대를 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보자면 당연한 처사임에도 한 가닥 미련이 남아서 인간적 희망을 두었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저 칩거에 들어가서도 자신을 변호한 대리인은 출입이 안 되었고 헤어와 미용을 담당한 사람만이 매일 출근하듯 드나드는 모습에서 한숨이 절로 났습니다. 거기에다 정치적 행보를 하려는 듯 지지층을 결집하는 움직임을 보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권력과 권세가 아무리 좋다지만 저렇게까지 붙들어서 무엇이 남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었다는 자존심, 한순간 권력의 정점에서 민간인으로 물러난 비참함, 지지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실망감, 다시 재도약을 시도해 보려는 기대감 등 이 모든 것 放下着(방하착) “그만 내려놓으시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라도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해 자신의 약속을 늦었지만 지켜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 이 기대가 너무 큰 욕심으로 또 무너지지 않기를 희망해봅니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는 수치를 면하리라” 집회서 20장의 말씀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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