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개구리
뛰어라 개구리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7.03.14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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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어렸을 때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이즈음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불러지는 노래이지요. 흙먼지 풀풀 날리며 고무줄 위를 넘나들던 놀이. 나는 나비처럼 가벼웠어요.

세월이 흘렀고 이제 봄은 제비와 함께 오지 않습니다. 나도 더는 나비처럼 가볍지 못하고요. 생의 무게는 전분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단단해졌고 더는 내게 중력을 거슬러 뛰어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응의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결국 가라앉다가 흙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몰라요.

처마 밑에 진흙 물어다가 집을 짓던 제비 부부를 위해 아버지는 진흙집 아래에 널빤지를 대주었지요. 흙과 제비 똥과 행여 제비 새끼가 마루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어요. 절대 내치지 않았어요. 우리 집은 나의 집이기도 했고 또 제비의 집이기도 했지요. 소유의 개념이 지금만큼 철저하지 않았던 시대.

아버지와 엄마는 내 입에 밥 넣어주기 바빴고 제비 부부는 제 새끼 입에 밥 넣어주기 바빴어요. 말하자면 부모님과 제비 부부는 처지가 같은, 말 그대로 동병상련이었어요. 내남 따지며 보낼 시간조차 아까웠던 시절...

흙구슬을 이어 붙인 볼록 볼록한 깔때기 모양의 흙집 안에 제비가 알을 낳고 부화하는 걸 보면서 나도 부지런히 자라났어요. 붉은 입을 쩍쩍 벌리며 조르는 새끼들 때문에 빨랫줄에 앉아 잠시 쉴 틈도 없었던 제비 부부.

나는 사실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보다 마루에서 뒹굴 대며 제비들을 보는 걸 더 좋아했었지요. 담 너머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엄마 제비가 용케도 제 새끼를 찾아오는 게 언제든 반가웠지요. 엄마 온다며 목을 길게 빼고 붉은 입을 쩍 벌리며 마음껏 소란스러운 제비 새끼들을 보는 일도 좋았어요. 제비가 찾아온 봄은 늘 그렇게 북적거렸어요. 제비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였고 삼월이면 북상하는 봄 그 자체였어요.

숲 속의 너른 습지에 아직 산개구리가 오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물웅덩이를 뒤덮을 만큼 알을 낳았었는데 웬일인지 작년부터 그 수가 급감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도롱뇽도 날도래도 게아재비도 웅덩이 식구들이 모두 줄었어요.

이전보다 많이 줄긴 했어도 작년 이맘때 습지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날마다 숲 속 음악회였었지요. 산개구리들은 얼마나 귀가 밝은지 멀리 발걸음 소리에도 뚝 노래를 멈추었어요. 얼마나 눈이 밝은지 몸만 뒤척여도 노래를 멈추었어요. 마치 그들 중 어느 한 개구리가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개구리 숲 속 신년음악회에 초대받고 싶어서 나는 습지 바위에 앉아 발이 저리도록 꼼짝 않고 있어야 했지요.

이제 겨우 경칩이 지났으니 좀 더 기다려보아야겠지만 불안하고 초조하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요.

제비도 그 시절의 엄마 아버지도,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씩 나의 하늘 아래에서 떠나갈수록 봄 하늘이 텅 비어갑니다.

그렇듯 개구리의 첫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적막의 봄이 올 것 같아 두려운 거예요.

봄 하늘을 가득 채웠던 제비들이 사라지듯 봄 땅을 가득 채우던 개구리마저 보이지 않을까 봐요. 마음껏 하늘을 나는, 마음껏 땅을 뛰는 당신들이 가득한 봄날이 다시 오면 안 될까요. 잔칫집 마당처럼 시끌시끌한 봄. 출석률 100프로의 봄.

개구리가 뛰어야 뒤이어 벌레들이 기지개를 켤 텐데, 그 많던 개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겨우 경칩. 약속 시간 조금 늦는다고 성화를 부리는 거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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