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눈
봄 눈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3.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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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평소 차분한 사람일지라도 봄 맞는 일에는 성급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봄맞이에는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간절함일 것이다. 사계절 중 가장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오는 계절이기 때문에 봄에 대한 기다림은 그만큼 간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간절한 기다림에는 꼭 훼방꾼이 있게 마련이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봄이 오는 것을 훼방하는 존재가 있다면, 이는 무척 얄미울 것이다.

당(唐)의 시인 동방규는 봄의 훼방꾼 중 대표격인 춘설(春雪)을 어떻게 노래하였을까?


봄 눈(春雪)

春雪滿空來(춘설만공래) 봄눈이 공중 가득 내리는데
觸處似花開(촉처사화개) 닿은 곳마다 마치 꽃이 핀 듯하구나
不知園裏樹(부지원리수) 정원 안 나무
若箇是眞梅(약개시진매) 어느 것이 진짜 매화인지 모르겠네


눈은 겨울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을에도 봄에도 종종 오는 것이 눈이다. 그렇게 보면, 봄눈은 사람들에게 그리 낯선 존재는 아니다. 이러한 봄눈은 떠나는 겨울에 대한 미련의 의미로 다가오기보다는, 오는 봄에 대한 훼방꾼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의 눈에는 춘설이 봄 훼방꾼으로 보인 것 같지는 않다. 공중에 가득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봄눈치고는 적지 않은 눈이지만, 시인의 눈에 그 모습은 차갑거나 우울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다. 도리어 꽃이 피는 것처럼 화사하게 느껴진다.

설중매(雪中梅)라는 말이 있듯이, 매화나무 가지에서 매화꽃과 눈이 만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매화는 추위에도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데, 그 모습이 얼핏 보면 마치 흰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위에 눈이 얹어지면, 어떤 것이 눈이고 어떤 것이 매화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낮에 자세히 보면 구분이 안 될 리 없겠지만, 시인은 짐짓 구분이 안 되는 양 너스레를 떨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그래서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겨울처럼 눈이 내린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눈을 봄의 훼방꾼으로 보는 시각도 따지고 보면 가벼운 투정일 뿐이다. 봄이 오는 것이 어길 수 없는 일임을 안다면, 눈은 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봄꽃만큼이나 어여쁜 존재가 아니겠는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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