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산
내 마음의 산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3.12 2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남해는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이 기지개 켜는 봄이다. 무심천변에는 억새가 제 세상인 양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어도 이곳은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매화도 꽃향기를 실어 나른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청주체육관 주변은 산객들로 북적인다. 밖엔 냉랭한 기운이 돌아도 차 안은 정겨움이 넘친다. 비스킷을 봉지에서 꺼내고 주스를 건넨다. 커피를 타 주느냐 물으며 시간의 간극을 좁힌다. 첫걸음, 청연, 산적, 산그리메, 오드리, 느티나무, 반디, 대왕…. 알 듯 말 듯한 암호 같은 호칭이지만 불러줘 고맙고 잊지 않아서 반갑다. 큰 형님격인 봉황님 내외분도 반가움에 악수한 손을 놓지 않는다.

오전 11시쯤부터 시작한 산행, 청주에서 4시간여를 달려와 지루하지만 마음은 들뜬다. 오늘 산행은 응봉산을 거쳐 설흘산에 오른 다음 가천다랭이마을과 독일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해발 481M인 설흘산은 남해군 남면 홍현리 바닷가에 있어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산이다. 응봉산에서 시작해 설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서로 길고 남북이 가파른데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아기자기한 바위와 바위벼랑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진다.

칼바위 능선에 선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 색깔도 푸르다. 내 마음도 푸르디푸를까? 그동안 산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푹푹 찌는 여름에도 어둠의 시간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다. 가슴이 답답해 몸부림치고, 일이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고, 편을 가르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을 때마다 마음을 풀려고 랜턴으로 불을 밝혔다. 시린 가슴 덥히고 허전한 속 채우려 능선을 넘었다. 누군가는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 했다. 또 어떤 이는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 했다. 그러나 내게 산은 성취나 즐김의 대상만이 아니다. 암벽이 아슬아슬했던 북한산, 칼바람 불던 덕유산, 새해 벽두의 치악산, 12시간 넘게 걸었던 설악산. 어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산에 올랐다. 위로받고 싶어 산을 찾았다. 하소연의 대상이었고 투정의 상대였다.

암벽에서 내려오니 평탄한 길이 반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인생 흘러가는 노정을 보는 듯하다. 산도 내게 그렇다고 화답하고 있다. 한동안 긴 코스의 산행을 하지 않아 염려했지만 봄기운 덕분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하루하루 견딜만한 힘을 주심에 감사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어 푸르디푸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다랭이 마을도 평화롭기만 하다. 갇혀 있던 시간에서 벗어난 봄맞이 외출, 내 가슴에도 봄바람 들었다. 굴곡진 시간에서 빠져나온다.

오늘도 산만큼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해 산에 오르고 있다. 산만한 사람이 되지 못해 능선을 밟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