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이렇게 사람이 없나
청와대에 이렇게 사람이 없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3.12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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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헌번재판소 결정을 듣고나서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전직 표현은 생략함)과 그의 변호인단이 헌재에 적극 대처하며 법리적 방어에 승부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헌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부적절한 대처가 엄청난 공분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사유에서는 배제했다.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와 성실 의무 위반 혐의를 받고있지만,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요지였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자유 침해도 증거 부족을 들어 배척했다. 증거나 정황이 모호할 경우 혐의를 받는 측이 절대 유리해지는 재판 관행이 드러난 이 지점에서 대통령 측이 정공법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헌재가 탄핵 결정의 주요 사유로 대통령의 `헌법 수호의지 결여'를 꼽은 대목에서 이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헌재가 추상적 개념인 대통령의 의지까지 부정하고 탄핵 사유로 적시한 것은 순전히 대통령 측이 자초한 결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했던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헌재 출석도 외면했다. 사과는 뒷전이고 기획된 공작에 엮였다는 변명과 언론에 대한 비방만 되풀이했다. 변호인들은 한술 더 떴다. 일반 법정같았으면 감치나 퇴정 명령을 받았을 재판부 모독을 일삼았다. 재판관이 국회 소추위원들과 한편을 먹었다거나 소추위의 수석 대리인 같다는 모욕을 퍼부었다. 탄핵이 결정되면 아스팔트가 피와 눈물로 뒤덮일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친박집회에 나가 줄기차게 헌재 부정과 불복을 선동한 변호사도 있었다. 재판부가 선의를 가질 여지를 눈꼽만큼도 주지않는 변칙과 반칙으로 일관한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와 해명에 적극성을 보이고 검찰 수사와 헌재 심리에도 능동적으로 나서 법리적 방어에 주력했다면 어땠을까. 변호인들도 대통령의 드러난 과실은 인정하되 최순실과의 공범 관계는 부정하며 탄핵은 가혹하다는 인정에 호소했다면 8대 0의 일방적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부질없는 잡념은 리더와 참모들이 총체적으로 이토록 완벽하게 무능한 집단이 있을까 하는 의아함으로 이어졌다. 부인과 변명을 거듭하며 지지층의 집단행동을 획책하는 선동 작전, 법정 밖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초법적 전략, 노골적 겁박과 섬뜩한 구호로 헌재를 굴복시키려는 뒷골목 술수 등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는 5대 3이니, 4대 4니 하는 가당찮은 계산들을 하고 있었다니 하는 말이다. 

최순실의 꼭두각시가 돼버린 대통령은 그렇다 쳐도 학력과 이력이 넘쳐나는 청와대 참모들의 판단력은 달랐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하긴 임기를 시작해 탄핵을 받기까지 과정에서 대통령의 일탈에 제동을 건 참모는 딱 한 사람 뿐이었다.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이 청와대가 하달한 블랙리스트 집행을 거부하며 대통령에게 간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충언은 출장 중에 경질을 통보받는 수모로 보상을 받았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헌재에서 “대통령의 뜻에만 전념하다보니 적절성을 판단하는데 소홀했다”며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으나 때늦은 후회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대통령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며 로봇 역할에만 매진했음을 실토했다. 능력과 인품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충성과 맹종, 최순실의 추천만을 기준으로 삼은 대통령의 인사에서 참다운 조력자가 나올 리도 없었다.  

헌재 결정이 난지 이틀이 지난 어제 오후까지도 대통령은 침묵했다. 승복을 선언하고 탄핵반대 시위에 나선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최소한의 양식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다시 실망했다.

반대집회 참가자 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대통령은 아랑곳않고 혼란과 소동을 지켜만 보는 모양새다.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는 메시지를 밖으로 전달하며 진영간 대립을 격화시켜 자신을 수사하게될 검찰을 위축시키려한다는 비난까지 받는다.

그러나 측근이나 참모들 중 누구 하나 대통령에게 합당한 처신을 건의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국민의 분노를 다독이지 못하는 데는 입을 다물고 보좌하는 참모들의 책임도 크다.

차기 대선주자들도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쓴소리에 귀를 닫는 리더, 자리 보전을 위해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참모들에 둘러싸인 리더의 말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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