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7.03.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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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저도 모르게 잔뜩 힘을 주고 있었어요. 알지 못하는 그분이 들어오시기 전에 얼른 나가야 했으니까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일면식도 없을 그분 모르게 슬쩍 일을 처리하는 게 서로에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리화시키고 있었죠.

이런, 하늘도 무심하시지. 뱃속이 마감 처리가 되지 않는 거예요. 뱃속에서 연신 천둥소리가 나니, 식은땀이 멈추질 않고 큰일 났다 싶었어요. 이러다가 원하지 않는 곤경에 빠지진 않을까,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군요.

무슨 인기척이 났어요. 기어코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는구나, 몸이 바짝 움츠려지고 말았죠. 일단은 몸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 알지 못하는 그분을 만나야만 되는 상황을 맞닥뜨렸답니다.

손을 씻고는 화장실 출입문을 열었어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 뵙는 그분이 떡 하니 서 계시더군요. 단 한 순간도 머뭇거릴 틈이 없었죠.

“(머리를 조아리며) 목사님이시죠? 죄송합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그만 말씀도 못 드리고 들어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화장실 좀 쓴 건데, 뭐 그런 걸 갖고. 괜찮습니다.”

“(오히려 당황해서) 교회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급한 마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노크를 해도 아무도 계시지 않기에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괜찮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그분이 저를 이유 여하를 떠나 주거침입으로 신고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만약에 일이 그 지경까지 갔으면, 망신살이 뻗쳐도 단단히 뻗쳤을 겁니다.

긴장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돌아오다가, 깜빡 잊고 두고 온 스마트폰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말로 웃펐지요. 순간 머쓱했지만, 그분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비타민 음료 박스를 탁자에 놓으면서) 제가 그만 당황해서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놓고 나왔습니다.”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 이러실 거까진 없으신데.”

“(스마트폰을 갖고 나오면서) 아깐 정말 급했습니다. 갑작스레 설사갉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모처럼 말로만 듣던 배티성지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고난의 길)'를 걷고 내려오던 초행길에, 낯선 동네에서 받은 선물은 넘치고도 넘쳤습니다.

그렇군요.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에게도 은혜를 줄 수 있는 거군요.

다시 돌아오는 길에, 생면부지였던 그분의 고귀한 화장실이 있던 교회에 딸린 부속건물의 거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큰 그릇이 떠올랐습니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었거든요.

그분의 훈훈하고 넉넉한 미소를 잊을 수 없는 저로서는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우리들의 누추함을 익히 아시는 당신께서 그분을 굽어 살펴 주옵소서. 당신의 사랑에만 의지하오니, 그분을 꼭 품어 주옵소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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