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의리~!
여자는 의리~!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03.09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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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여자는 의리!”라고 평소 외치던 나는 군소리 한 번 못하고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일정도 보지 않은 채. 내키지 않는 마음이 펄펄 끓는 물에 떼어 넣은 수제비처럼 바글바글 떠올랐지만, 뱉어 놓은 말이 있어서 이 계절은 그녀들에게 바치기로 했다.

그녀들과의 인연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동하는 무리를 놓치고 홀로 남겨진 철새처럼, 낯선 땅 제천에 발령이 나서 오들거리고 있을 때, 그녀들은 동료라는 따듯한 깃털로 다가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었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서 나는 청주로 발령이 났다. 그 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보내며 우리는 분기별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었다. 그런 그녀들과 처음 가는 먼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홍콩이었다. 몇 년 전 여름, 배낭을 둘러메고 홀로 부유하던 곳이다. 작은 도시라 어떤 날은 택시를 타고 어떤 날은 걸어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던, 번쩍이는 도시에서 몇 발자국만 벗어나도 너덜너덜한 뒷골목이 존재하던, 화장한 여인과 민 낯의 여인의 얼굴을 동시에 보는 듯하던, 먼지 같은 나를 발견하고 겸손하게 살자고 다짐했던, 결국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와 습도 그리고 한없이 작은 나를 배낭 속에 꾹꾹 담아왔던 곳이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 봐도 여럿이 간다면 쇼핑 빼고는 할 것이 없는 도시다. 그런데 나는 쇼핑엔 별 흥미가 없다. 그런고로 내게 홍콩은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곳을 원했다. 모임의 4명 중 3명이 원하는 곳이었다.

가경동 터미널에 도착했다. 삼십분에 한 대씩 공항리무진이 운행되는 터라 예약 없이 터덜터덜 차표를 사러 갔다. 매진이란다. 두 시간 후의 차표만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그 표를 사고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비행기 시간에 빠듯하게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세 시간 반을 날아 당도한 홍콩은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별 느낌 없이 소호거리와 침사추이 빅토리아 파크, 이층버스 투어를 코스대로 따라다녔다. 마지막 날 심천과 마카오 중 선택 관광이 있었다. 심천은 전에 갔으므로 마카오를 가자고 적극 밀어붙였다. 그래도 가보지 못한 마카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마카오. 그래서인지, 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 많았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성바울성당에서 한 컷 찍고 세나두광장을 산책했다. 카지노 이곳저곳을 둘러 본 후 마카오 타워로 가서 번지점프를 보았다. 로프를 몸에 매단 채 허공에서 대롱거리는 사람을 보며, 대롱거리며 살고 있는 내 삶을 들여다본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삶이라는 로프를 몸에 매단 채 아등바등 사는 나를. 정유년 새해에는 멀리 보며 살자고 다짐해 본다. 비록 언제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이지만, 단 하루를 살지라도 나만 보지 말고 주변의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바람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자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매서운 바람이 뺨을 갈겼다. 후려치는 바람에 뺨을 맞아도 우리나라가 좋다. 꽃샘추위가 온몸을 휘갈겨도 나는야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제일 좋다. 그리고 의리를 지킬 수 있게 해준 그녀들이 곁에 있어서 좋다. 공항에서 헤어지며 인사를 하는 그녀들에게 다시 한 번 외쳐본다. “여자는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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