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수저'들의 봄
`종이 수저'들의 봄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3.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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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허름한 기와집 앞마당, 봄이 자울자울 졸고 있다. 민들레와 국수나물 서로 어깨를 맞대고 유순해진 봄바람에 취해 몸을 살랑인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초록의 생명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겨울을 피해 입과 귀를 닫았을 동물들도 이제는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봄은 모든 생명의 시작점. 강을 따라 흐르는 물도 새 물인 듯 힘찰 터이고 그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도 한결 부드러울 터이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돌은 더욱 의연해 졌으리라.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왔다. 언제 보아도 안쓰럽고 대견한 자식이다. 어느새 이리 훌쩍 자랐나 싶다. 엄마 아빠의 흰머리를 보며 마음도 아파할 줄 알고, 역시 남자는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더니 제법 어른스러워진 아들이 기특하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나의 일상을 장황하게 들려주었다.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을 해 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가 부럽습니다'라는 대답을 준다. 무슨 말일까. 순간 머릿속이 뒤엉켜진 실타래처럼 혼란스럽게 얽히고 말았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늦은 나이로 대학을 가고 얼마 전 대학원을 수료했다. 그리고 요즘은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내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직 이십대 초반인 자신보다 내가 부럽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것이 그 세대들이 겪는 고민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진로를 택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혼돈에 빠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알기에 아들의 고민에 미안하기만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3포를 넘어 5포, 7포, n포 세대라고 한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꿈, 희망을 포기했다. 결국에는 몇 가지가 됐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n포 세대까지 오기에 이르렀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에 돌입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가 아닌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연봉이 꽤 쏠쏠한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 아닌 목표가 되었다.

얼마 전 큰 딸아이가 하는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 자신은 금 수저 흙 수저도 아닌 `조리퐁'에 들어 있는 `종이 수저'라는 것이다.

큰아이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러니 자연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아이는 대학을 우리 집 형편과 자신의 성적에 맞는 대학의 무역학과로 진학했고 직장도 그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이다 보니 매일 피곤함을 집까지 끌고 온다.

지금이라도 네가 좋아하는 수의학을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했다가 퉁바리만 받고 말았다. 나이도 그렇고, 공부를 하자면 다시 부모님께 부담이 될 터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성공하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이러한 고민이 어찌 우리 집 아이들에게 국한된 문제일까. 이것은 우리 기성세대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만들어 놓은 올가미이며 덫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때부터 자신의 욕심으로 키운 결과이니 말이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넓은 바다를 헤엄치다 종국에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큰 꿈은 아니더라도,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의 행복한 송사리처럼 부디 작고 소중한 꿈이라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종이 수저' 엄마는 소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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