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이어받아야 할 광장의 희망
`제도'가 이어받아야 할 광장의 희망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3.0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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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사람들이 말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무겁고 깊게 숙연해지고 있다.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변론 일정이 마무리되고, 기간 연장의 희망이 무참하게 꺾인 뒤 특검 역시 수사를 마감할 수밖에 없게 된 3월. 마침표로 시작된 새봄의 공기가 아직도 겨울의 수상한 그림자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꽃샘추위에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사람들은 결정의 일주일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서슬이 시퍼런 상태로 막말을 거두지 않는 극단과, 평화를 제대로 지켜가면서 촛불로 탄식하고 분노했던 혁명의 물결은 여전히 치열하다. `끝날 때까지 끝낼 수 없다'며 진정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은 이제 사실상 절정의 초읽기에 돌입해 있다. 형언하기 참담한 반대도 맹렬하다. 막무가내로 세를 부풀리며 객관성을 가장한 편파와 왜곡은 여전히 멈출 수 없는 광란의 질주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길어야 닷새, 어쩌면 당장 내일모레라도 탄핵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온 나라와 백성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그 시련의 극복을 위한 용트림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바다처럼 넘실거렸던 촛불이든 함부로 휘둘렀던 태극기가 됐든 이제 광장에서 제도로 돌아갈 길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광장은, 비통함과 분노와 어처구니없음에 치를 떨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치지 않았고, 마침내 타락과 추락의 위험에서 나라를 구하고 있는 광장은 위대하다.

이제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촛불과 광장이 제도에 길을 물려줘야 하는 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나 여전히 간단하지는 않다.

광장은 무수한 촛불과 사람들의 안간힘을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역사의 흔한 소용돌이로 호도하려는 `제도'에 희망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의 속살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게 했으며, 진실과 화해를 위한 진정성과 진지함을 여태 깨우치지 못했다. 반민특위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결국 친일과 독점적 권력 세습의 악질적인 근본을 파헤치고 역사의 맑은 속살로부터 비로소 깨끗하고 새로워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탄핵이 초읽기로 진입하면서 이제 우리도 서서히 광장을 `제도'에게 돌려줘야 할 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

광장의 열정과 희망을 존엄하고 사무치게 받아야 하는 `제도'가 바꿔야 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촛불로 승화되는 도도한 신념의 참여는 물론 그마저도 실천할 수 없었던 힘겨운 백성의 삶도 보듬어야 하는 일은 당연하다.

더불어 극단의 편파와 왜곡, 그리고 식민적 근성을 숨기지 않았던 몸부림에도 용서와 관용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광장의 정신을 이어가야 할 `제도'가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비무장지대와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의 개헌 시도일 것이다. 촛불은 맨 처음 `이게 나라냐'라는 강력한 의구심에서 시작됐다. 최순실의 상상할 수 없는 국정농단에 한탄하고 분노하면서 촛불은 광장을 만들었고, 그 광장에서 가장 확실하게 학습 되고 무장되었던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임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은 촛불 내내 준수되었고, 쉽게 개헌을 말하지 않았다.

헌법은 4월과 5월, 6월로 이어지는 피울음을 통해 만들어졌고 지켜져 왔다. (정치적)권력 구조 변화를 통해 당파적 이해득실만을 고집하는 `제도'는 다시 질풍노도와 같은 광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길을 광장으로 만드는 힘을 가졌고, 광장으로 통하는 길을 충분히 알고 있음을 `제도'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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