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월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3.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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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3월이다. 왠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달이다.

새해 들면서 결심은 하고 실행하지 못한 일을 시작했다. 아침 걷기다. 아침에 일어나 시골길을 한 시간 걸었다. 30분 정도 걸으니 오금이 당긴다. 텅 빈 시골길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이렇게 하루에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걷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은 시간이 없다기보다 나태한 게으름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돌아올 땐 발이 무거워 땅에 끌리다시피 걸었다. 1시간 걷기에 녹초가 되는 허약함을 확인한 날이었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걷기에 대한 욕망이 다시 피어오른 것이다.

2014년, 나는 팽목항까지 걸었었다. 19일 동안 380여㎣를 걸었다. 난생처음 그렇게 걸었다. 걷기가 온전히 하루의 일과였던 적은 군복무시절에 천리행군을 한 이후에 처음이었다. 그때 걷기가 수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너 시간을 묵묵히 걷다 보면 땀이 온몸을 적시고 체력이 한계점에 도달하는 것을 느끼는 시점이 온다. 그때쯤이면 신경이 곤두서서 신발끈 조임의 미세한 차이나 양말 솔기의 스침에도 반응할 만큼 예민해진다. 상념은 사라지고 온몸의 신경이 한곳으로 집중된다. 그런 것이 화두에 몰입한 무아의 경지일까. 그때쯤이면 걷는 일이 힘들지 않게 된다. 몸의 힘은 모두 빠져나가고 걷기는 관성이 된다. 한발이 나가 땅에 닿으면 다음 발이 절로 따라나가 한 걸음이 된다. 이때 비로소 걷기가 고행이 아니라 참된 자유라는 것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3월의 첫날에 되살아난 걷기에 대한 기억이다. 이렇듯 3월은 잊었던 것, 사라졌던 것을 되살려낸다. 겨우내 죽어 있던 나무와 꽃들을 되살려낸다. 생명을 되살려낸다. 김광섭 시인은 그의 시 “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 모든 거리(距離)가 풀리면서 / 멀리 간 것들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 꽃은 꽃으로 /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 그 근원에서 相見禮를 이룬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서고, 죽은 것과 산 것들이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루는 봄은 그래서 사랑의 계절이고 소생의 계절이다. 3월이라고 특별한 해가 뜨는 것은 아니다. 3월이라고 해서 겨울로부터 봄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 지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3월이 오면 그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의 마음이 설레고 희망을 품게 되는 건 3월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며 신의 축복이다.

특히 올해의 3월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자연의 소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소생을 열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3월을 맞는 의미를 더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내려지고, 모두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벅찬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도 이 3월이다. 아직도 차디찬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9명의 희생자를 찾아 가족의 품에서 고이 잠들게 하고,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여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도 이 3월이다.

권력과 재벌의 유착을 끊어내고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를 꿈꾸는 것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일,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청년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이런 우리의 모든 염원을 시작하는 것도 이 3월이다. 아, 3월은 무엇이든 꿈꾸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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