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까치꽃 피어나다
봄 까치꽃 피어나다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03.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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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며칠 전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와 눈은 봄을 재촉하려는 전령이었나 보다. 훈기가 실려 있는 바람에서 제법 봄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유난히 더디고 암울하던 지난겨울이었다. 무엇하나 속 시원한 것도 없이 지지부진한데다 경기마저 바닥을 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I에 이어 구제역까지 불청객으로 찾아와 서민들의 등을 짓누른다. 우리 부부도 그 짓누름의 무게에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부부는 자영업자다. 자그마치 26년째 자영업으로 밥벌이하고 있는 중이다.

시쳇말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세월, 이제는 이골이 날만도 한데 마음 편하게 가게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실패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느닷없는 사고로 가슴을 쓸어 낸 일도 많았다. 남편은 몇 차례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하게 되었지만 그 다리로 여전히 오토바이로 배달한다.

나 역시도 팔에 깁스를 하고도,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만했다. 우리 부부는 십여 년을 단 하루의 휴일도 누리지 못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자본 없이 맨몸으로 자영업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굴레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 아이에게 학자금대출이라는 무서운 멍에를 씌우지 않고 대학을 무사히 졸업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주변에서 가게 문을 닫아야겠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임대료도 줄 수 없을 지경이란다. 이러다 길거리에 나 앉을 것 같다며 한숨짓는 소리가 가슴을 짓누른다.

제법 튼실하다는 소리를 듣는 우리 가게도 매출이 많이 줄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는 자영업자의 실태를 나타내는 통계자료를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자화상일 터였다.

가끔 가게로 치킨점을 해보겠다고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첫 번째 질문은 부부가 함께할 것인지와 여유자금이 있는지의 여부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네들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인건비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하고 창업해서 안정을 찾기 전까지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해내려면 여유자금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부족한 자금은 대출을 받아 하겠다고 한다. 난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돈마저 날리고 싶으면 하세요.”라고 잘라 말한다.

열정만으로 열심히 한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냉혹하고 슬프지만 그게 요즘의 현실이다. 내가 오랜 세월 자영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2015년 통계자료를 보면 하루 창업하는 자영업 수가 3000곳이 넘고 폐업하는 곳은 20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자영업도 철저하게 부익부 빈익빈 논리가 적용되는 동토의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영하 날씨보다 마음이 더 시렸던 지난 겨울이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 여전히 경기침체에 AI로 매출은 곤두박질 쳐 제자리로 돌아올 기미조차 없다. 그럼에도 봄은 찾아왔다.

보도블록 비좁은 틈새에도, 각종 유해물질 덩어리라는 우레탄이 덮여 있는 틈새를 비집고 봄 까치 꽃이 피어나고 있다.

낮은 자세로 보아야 보이는 작고 여린 꽃에서 나는 희망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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