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뿌리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3.02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킨타쿤테,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저자의 조상이 아프리카 감비아의 한적한 마을에서 미국의 노예가 되기까지를 그린 실화소설이다. 족보도 없이 7대에 걸친 자기 조상을 찾기까지 그 집념이 오죽했을까?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관심도 없다가 늙으면 부모님 산소를 이장하여 좋은 곳에 모시거나 재단장하기도 하고, 벽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족보를 꺼내서 보게 된다. 왜 그럴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아들, 증조할아버지는 고조할아버지의 아들….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나의 뿌리.

필자는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35세손이다. 그러면 권행은? 그분은 경주김씨에서 왔다고 한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 올라가면 아마도 무슨 알에서 나왔거나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아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역사학자이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장 먼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생물학자들이다. 그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 모든 생명의 뿌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들은 다양한 생명체들을 탐구하면서 그 생명체들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한 뿌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들이 나왔는가에 대해서 설명한 이론이 바로 진화론이다.

어떤 면에서 생물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은 이 뿌리 찾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이런 지질시대를 연구하는 지질학도 알고 보면 이 뿌리 찾기다.

지층에 새겨진 화석들을 조사해 생명체가 어떻게 매우 단순한 미생물에서 점차 복잡한 구조로 진화하여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질학자들도 고작 해야 지구가 탄생한 이후의 뿌리 찾기다.

지구탄생 이전의 뿌리 찾기는 천문학자들의 몫이다. 천문학자들은 별을 탐구한다. 별은 지구를 만든 뿌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원소는 별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몸은 탄소, 산소, 질소, 철, 아연, 황 등 수없이 많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과학자들은 이 원소들이 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은 수소기체를 사용하여 다양한 원소를 만들어내는 원소 제조장이다. 말하자면 연금술 공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소는 초신성이라고 하는 대폭발이 일어나서 우주 공간에 퍼지고 이 퍼진 원소들이 모여서 태양계가 생겨나고 거기에서 지구도 생겨났다.

나는 이 뿌리의 역사를 물리학시대, 화학시대, 생물학시대, 신화시대, 역사시대로 구분하고자 한다. 태초를 과학자들은 빅뱅이라고 부른다.

빅뱅이라는 대 폭발로 시간, 공간, 물질이 생겨났다. 이때 생긴 물질은 원자가 되기 이전의 소립자들뿐이었다. 여기까지가 물리학시대이다. 이 소립자들이 모여서 원자가 생겨나고 이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가 생겨나고 이 분자들이 더 모여서 아미노산, 단백질 등 고분자 물질이 생겨났다. 여기까지가 화학시대이다. 이 분자들이 모여서 세포가 생겨나고 이 세포가 모여서 생명이 된 것이다. 생명은 매우 단순한 구조에서 점차 복잡한 구조로 변하고 이 변화의 마지막에 인간이 생겨난 것이다. 여기까지가 생물학시대이다. 인간이 생겨나서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까지의 신화시대를 거쳐 지금의 역사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동양인과 서양인이, 사람과 짐승이, 모든 미물들이 우리와 같은 조상의 자손이다. 더 나아가 나무나 돌도 나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왜 인간은 모든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에 대해서 소위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것은 모두가 형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