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배움
  • 법원<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 승인 2017.03.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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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옥이 있으나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이 있으나 배우지 아니하면 도를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금은 산에 있으면서도 산을 모르고 산 또한 금을 모릅니다. 사람이 금을 알고 산속의 금을 캐서 세공을 해서 사용합니다. 금을 세공하여 사용하면 가난을 면하듯 학문도 또한 그러하여 자연 속의 진리를 터득하여 쓰면 인생의 가난을 면할 수 있습니다.

중생과 부처는 깨달음의 차이고 범부와 성인은 배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니 아라한은 더 배울 것이 없어 무학 성자가 되었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전혀 아는 것이 없으므로 무학 범부라 합니다. 그러므로 범부도 게으르지 아니하면 성인이 될 수 있으니 성인의 영역은 배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어리석다고 해도 하루에 글자 하나씩이야 외우겠지요. 하루에 한자씩 한 달이면 30글자가 되고 1년이면 365자가 되지요. 정성스럽게 10년 공부를 한다면 통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단지 게으르고 태만한 것이 병입니다. 거만하면 배울 수 없고 게으르면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머리가 좋아 영리한 사람도 있고 머리가 나빠 우둔한 사람도 있습니다. 자로가 공자님께 물었습니다. “성인은 나면서부터 안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배웁니까?”공자께서 말씀하시되 “알고 배우는 것은 성인이고 배워 아는 것은 보통 사람이다. 비록 성인이나 보통사람이라도 배우지 아니할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금은 본래 금입니다.

흙속에 묻혀 있는 금이라 해서 금이 아닌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을 캐서 비녀나, 가락지, 그릇 등을 만들면 그 정교하고 빛나는 아름다움이 어찌 흙속의 금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갈고 닦는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배움에는 여러 조건이 있겠습니다만 배운다고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일 안에 많은 학문을 체계 있게 또 실용적으로 배우려 하면 좋은 스승과 벗(도반)이 필요 하고 또한 훌륭한 환경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절집에서는 모든 사람이 성품 가운데서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나 이를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가르침을 추구하여야 되려니와 만약 스스로 깨친 자는 밖으로 구할 것이 없다 했습니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十五, 而志于學. 지우학), 30세에 바로 서고(三十, 而立. 이립), 40세에 유혹되지 않고(四十, 而不惑. 불혹), 50세에 천명을 알고(五十, 而知天命. 지천명), 60세에 귀가 순해지고(六十, 而耳順. 이순), 70세에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을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七十, 而從心所欲不踰矩. 종심소욕불유구)'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자신의 나이별로 공부를 이룬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공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곧 공부라고 생각한 겁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길이 배움에 있다는 것을 알고 평생을 그 길에 매진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공부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다양한 정답을 찾아가는 참다운 배움의 길을 만들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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