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드 화살
큐피드 화살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3.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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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응아”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내는 소리다. 엄마에게는 큐피드 화살이 심장에 박히는 소리다. 이날부터 엄마의 눈에 콩깍지가 씌운다. 누워만 있어서 꼼짝도 못하는 꼬물이가 엄마의 하루를 지배한다.

그 녀석을 위하여 수시로 우유를 타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맞추고 혼잣말을 하는 건 예사다. 표정으로 감정까지도 읽어내어 울음으로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불편한지도 알아차려야 하는 게 엄마다. 종일 아기에게 시달려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고 3.2kg의 몸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가 않다. 화살의 힘이다.

나는 이 화살이 한 개가 박혔다. 아들이었다. 시간과 더불어 나를 웃게 해주었고 기쁘게 했다. 녀석의 전화 한 통에 잔뜩 찌푸렸던 나의 날씨가 금방 구름이 걷히고 맑아진다. 그 화살은 독성이 강해서 내가 온통 아들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 남들 눈에는 집착으로 보이는가 보다. 나에게 아들 바보라고 우려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아들을 직장일로 세 살부터 유치원에 떼어놓아야 했다. 엄마를 찾으며 온종일 울어 목이 쉰 녀석을 끌어안고 같이 울었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집을 떠나 대학입시 전쟁을 고스란히 혼자 치른 셈이다. 공부와의 씨름을 홀로 겪어내게 해서 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욱신욱신 아프다. 어려서부터 고생시킨 미안함이 내가 그 녀석을 놓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제 아들은 나의 잔소리가 필요 없다. 대학원생 아들은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나에게 자분자분 들려준다.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며 엄살을 피우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 나의 하소연도 들어줄 줄 안다. 친구이자 든든한 조언자이다.

한 설문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부해'란 말이다. 정작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라고 한다. 살갑던 아들도 10대 시절에 안아주려고 하면 “가족끼리 왜 그래요”하고 정색을 하곤 했다. 핸드폰의 할 말끝에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도 무반응, 무응답이었다. 아마 무심했어도 안으로는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던가 보았다. 군대에 면회 간 나를 달려와서 덥석 안아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서서히 중독되어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사춘기 때의 거부과정을 보내고 숙련의 시간을 거쳐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청년이 된 아들에게서 지금은 “저도 사랑해요”라는 답이 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아이들이 퉁퉁거릴지라도 사랑의 화살을 자꾸만 쏘아 보낼 일이다. 어쩌면 그들은 낯을 익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낯익어지면 나무 끝에서 시작된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듯이 마음 전체로 번져갈 것이다.

내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미리 미역국을 끓여서 냉동시켜 보내준다고 해도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아무것도 못해주어 서운한 마음을 다독이는데 “카톡”알림이 울린다.

“내가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부탁해요.

내가 다시 태어나는 그날도 자랑스런 나의 엄마가 돼줘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음악선물이다. 다시 그 화살이 내 심장에 박혔다. 순식간에 독성이 온몸으로 퍼진다. 나는 또 아들 바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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