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지각대장 존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02.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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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마냥 스무 살일 것 같은 내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다.

책 읽기 위해서는 짬을 내야 하는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집안 곳곳엔 여기저기에서 받은 육아용품으로 가득하다.

책장에도 점점 내 책들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서라는 직업이 부끄럽게 육아에 바쁘다는 핑계로 막무가내로 꽂혀 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저녁 책장 정리에 나섰다. 잘 읽지 않은 책들을 빼서 공간을 확보하고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은 골라 아이의 손에 닿는 위치에 꼽고 시리즈 또는 저자에 따라 책을 분류해서 정리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정리하다 `지각대장 존'(존 버닝햄 지음)을 손에 들었다. 까만 학사모와 코트를 입은 거대한 선생님이 물에 흠뻑 젖은 아이를 혼내는 그림으로 책은 시작된다.

한 장 넘겨보면 초등학교 1학년 글씨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면서도 다시 궁금해진다. 존은 학교 가는 길에 악어를 만나 가방을 가지고 실랑이하느라, 사자를 만나 바지가 뜯기는 바람에, 다리에서 커다란 파도를 만나 옷이 젖는 바람에 학교에 지각한다. 선생님이 존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다. 거짓말을 했다며 오히려 존에게 벌을 준다. 등굣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느 날, 제시간에 도착한 존 앞에 선생님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존은 선생님의 그런 상황을 믿어주지 않는다.

가볍게만 읽었던 이 책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읽으니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때때로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관심 받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며 가르쳐준다.

하지만 아이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먼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떠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물론 거짓말은 나쁘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줘야만 한다. 그럼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지각대장 존이 무미건조한 어른으로 자라난다면, 그 시절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지 않을까?

아이의 책을 정리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림책 한 권에서 아이와 어떻게 대화하고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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