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매화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2.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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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설중매(雪中梅)라는 것이 있다. 매화나무 가지에 눈과 꽃이 동거하는 진기한 광경이다.

눈으로 보면 겨울이고 꽃으로 보면 봄인 양면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차가운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는 것을 보면 매화꽃은 강인하다고 할 수 있고, 봄이 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으로 보면 매화꽃은 예지력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른 꽃이 피기 전에 일찍 핌으로써 갖는 희귀성이 아니더라도, 빼어난 자태와 향기로도 얼마든지 매력적인 꽃이다. 이러한 매화꽃은 송(宋)의 시인 주희(朱熹)에게는 무엇이었을까?

 

매화(梅花)

溪上寒梅應已開(계상한매응이개) 개울가에 한매는 이미 피었을 텐데
故人不寄一枝來(고인불기일지래) 벗은 매화 한 가지 꺾어 보내지 않는구려
天涯豈是 無芳物(천애기시무방물) 하늘 끝인들 어찌 꽃이야 없겠냐만
爲爾無心向酒杯(위이무심향주배) 무심한 그대 향해 술잔을 드네

 

시인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겨울 끝자리지만, 봄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때 시인에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고향 마을 개울이었다.

그 가장자리에 매화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 나무들이 이 즈음이면 꽃을 피우곤 했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시인의 뇌리에는 그 매화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꽃들을 함께 보고 즐겼던 고향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직접 얼굴은 못 보더라도 인편에 매화 꽃가지 하나 꺾어 보내주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 친구는 매화 꽃가지를 보내기는커녕, 오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매화꽃이야 고향 개울가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지 볼 수도 있지만, 시인이 고향 개울가 매화 꽃가지를 기다린 것은 친구 소식이 궁금해서이다. 그러나 무심한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예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그렇다고 친구가 원망스럽거나 걱정스럽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단지 그리울 뿐이다. 비록 친구는 옆에 없지만, 시인은 친구를 향해 술잔을 건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시기에 매화는 핀다. 무사히 겨울이 가는 것에 대한 안도와 봄이 오는 것에 대한 기대가 같이 포함된 것이 바로 매화꽃이다.

그래서 매화꽃을 보면, 사람들은 고향과 가족 친구를 떠올리곤 한다. 이른 봄에 매화꽃을 매개로 그리운 정을 되살릴 수 있으니, 매화꽃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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