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PC와 빨간 우체통
태블릿 PC와 빨간 우체통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2.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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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요즘 태블릿PC(Tablet PC)가 한참 인기다. 커다란 노트북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이 휴대가 간편한 고성능 태블릿PC, 인류를 진보시키고 세상을 바꾼 태블릿PC 열풍은 사용자가 폭발적인 증가 추세다.

그럼에도 추억 속에 머물러 있는 노스님의 연하장을 그리워하며 난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그날도 그랬다. 현관입구 기계적으로 줄 맞추어 벽에 기대어 있는 우체통, 딱히 받을 편지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다가선다. 년 초가 되면 동아리회원 모집, 수강생 모집하는 프로그램홍보로 우편함이 배가 부르다. 늘 공과금용지 광고전단만 배불리 먹는 바보 같은 상자 앞에 보물찾기하듯 뒤적였다. 인쇄된 주소가 아닌 가슴 따뜻하게 전하는 자필로 꾹꾹 눌러쓴 봉투가 무리 중에 개밥바라기처럼 반짝거린다. 수필반 동기생 늦깎이의 설설한 노스님의 손수 그린 신년연하장이었다. 옷 속을 파고들던 찬바람이 포근한 봄바람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삶의 향기를 전한다.

개강 후, 뜻밖의 노스님 말씀을 듣고 우리 모두는 배꼽을 움켜쥐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급우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단다. 아버님 같은 노스님은 일일이 연하장을 그려 밤새 주소록의 꼬부랑꼬부랑 영어로 된 메일주소를 편지 겉봉투에 정성껏 쓰시고 우체통에 넣으셨던 것이다.

당연히 반송이 될 수밖에. 노스님은 영문을 알 수 없기에 반송된 우편물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안고 산사에서 노구의 몸으로 우체국을 방문하니 창구직원들도 박장대소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난리법석이었다고 한다. 동기생들의 주소록에 메일주소를 몰랐던 노스님은 그것이 주소인 줄 아시고 겉봉투 주소에 적으셨던 것이다.

산사에서 우리 세대와 이십 년이란 강 너머에 계신 노스님은 컴퓨터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니 컴퓨터 용어는 물론 메일주소 그 자체를 모르고 계셨던 것이다. 다시 급우들에게 또박또박 한자 한자 적어내려 가는 장단에 춤을 추는 승의 자락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고, 커다란 웃음을 선사 받은 우체국직원은 웃음 속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우편물이라야 홍보 책자와 광고전단이 전부이다. 공과금 카드명세서조차도 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현대인은 자연스레 우체통을 멀리하게 된다. 또한 주소록에 메일주소가 자리 잡고 있으니 오히려 편지가 낯설기만 하지 않던가. 더구나 정보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스마트폰의 수많은 앱도 다 사용하지도 못하는 기성세대 분명 문명은 버거운 짐이다.

그럼에도 안방에 앉아 작은 상자 앞에 손가락만 터치하면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니, 어찌 그 판도라 같은 상자를 멀리 할 수 있겠느냐마는 하루만이라도 컴퓨터를 열어보지 않으면 불안하니 중독이다.

입술이 마른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점점 세상에서 떠밀려 지하의 방구석에서 지저깨비마냥 자리 잡는 빨간 우체통은 서럽다. 한때는 풍요로움에 행복했던 그가 어두운 지하에서 서러움과 추억을 끌어안은 채, 여고시절 밤새 창틀에 매달려 꽃 편지지에 시를 뿌리느라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던 연서를 전하던 우체통, 이젠 태블릿 PC에 밀려져 안타까울 뿐이다. 흑인지 백인지도 모르게 달려온 시간, 문명의 꽃이라 부르는 컴퓨터 앞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하늘을 바라본다. 삶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린다 말씀하신 노스님의 푼푼한 웃음이 되비추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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