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민사4, 괴산의 안동김씨 활약상
충민사4, 괴산의 안동김씨 활약상
  • 김홍숙<괴산군문화해설사>
  • 승인 2017.02.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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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홍숙

괴산의 인물로 하담공 김시양은 김인갑의 3자이다.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정자, 세자 시강원, 예조좌랑, 전라도도사, 예조 정랑, 수찬, 교리 이어 경상도 관찰사가 된다. 평안도 관찰사 겸 체찰부사에 발탁, 병조판서, 8도 도원수, 사도체찰사 등 선조실록을 개수할 때 숭록대부 판중추부사로 참여하였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남봉공 김치(金緻)는 부평공 김시회의 자인데 충무공 김시민에게 입양되었다.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이조참의, 동부승지,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 교리, 부제학, 제주 판관, 병조참지에 오른다. 동래부사, 경상도 관찰사가 되고 천문(天文)에 밝았다.

합천공 김곡은 하담 김시양의 장자로 합천 군수를 지냈다. 감사공 김소는 김인갑의 손이다. 알성문과 급제 후에 해주판관이 되었다. 병자호란 후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청나라에 갈 때 모시고 가게 된다.

강릉부사, 함경도 병사, 종성부사를 거쳐 호조참의가 된다. 그해 겨울 성절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귀국 길에 소현세자에게 들려서 공금을 아껴 세자의 귀국 말 준비 비용을 마련했다 한다. 승정원 부승지, 진주 목사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가 된다.

안주공 김번은 김시열의 2자로 무과 급제 후에 병자호란 시 장사로 추천되어 선전관을 제수 받고 봉림대군과 소현세자를 심양으로 모시고 가서 8년간 모셨다. 귀국 후에는 효종께서 남산가(南山歌)란 시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안풍군 김득신은 자는 자공이며 호는 백곡이다. 충무공 김시민의 손자이며 김치의 아들이다. 39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당시 한문학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 제일”이라는 평을 받고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성균관학, 장악원, 예조좌랑, 풍기군수, 승문원 판교, 강원도사, 홍천군수, 정선군수를 지낸다. 가선 대부에 올라 안풍군에 봉군 되었다.

백곡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1만3천번 읽고 서재를 억만재라고 하였다.

효종이 그의 시 [용호한강시]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특히 오언, 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한다. 시와 평론집인[종남총지],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젼소설[환백장군전], [청풍선생전]을 남겼다. 고음(孤吟)과 다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시를 통해 경세치평(經世治平)이라는 유가적 이상을 당쟁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 내지 못한 번뇌를 토로하기도 했다.

괴산지역의 안동김씨는 제학공파, 안렴사공파, 그리고 약간의 군사공파와 익원공파가 살고 있는데 주요 거주지는 다음과 같다. 제학공파로 괴산읍 능촌리에 구암공(김충갑) 후손, 문숙공(김제갑) 후손이, 소수면 수리(숫골)에는 참봉공(김우갑) 후손이, 사리면 황산에는 비안공(김인갑) 후손, 사리면 중흥리에는 통덕랑공(김철현) 후손, 증평읍내에는 비안공(김인갑) 후손, 증평읍 율리에는 구암공(김충갑) 후손이 살고 있다.

안렴사공파는 문광면 신기리와 문법리, 사리면 황산, 청천면 일대, 청안면 운곡리, 증평읍 남하리와 죽리 일대에 뿌리내리고 있다.

충민사 김시민 장군의 가문에서는 지금까지도 장군을 계속 배출하고 있으며 괴산읍 능촌리와 천안 등의 전국 각지에서 재계, 정계, 학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에 안동김씨 전국종친회장을 역임한 김남응 교장과 김학응 교장은 큰 기둥 역할을 하였으며 문중의 역사와 사료를 발굴, 정리하고 있는 국문학자 김항용 교사 등이 있다. 문인으로는 증평의 백곡 후손으로 전 증평예총 회장을 역임하고 군민대상을 수상한 수필가 김길자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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