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가는 길
안산 가는 길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2.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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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아빠! 나, 할 말 다하고 나왔어.” “그런 자리에선 얌전해야 하잖니?”

공장 굴뚝 여기저기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달갑지 않다. 미세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숨이 막히는데 산업단지에 가까울수록 도시가 매연으로 꽉 차 있다. 딸아이가 사회에 첫발을 떼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일러주는 징조 같다.

경기도 서해안에 있는 안산시는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고대에는 소금과 수산물로 명성을 얻은 어촌이었으나 현재에는 반월산업공단이 들어서고 시화산업단지 개발 등으로 인구가 70여만 명에 육박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고속국도나 수도권 전철 등으로 서울 등지와 접근성이 좋아 이 지역으로 산업일꾼들이 몰려들고 있다.

신흥 도시로 성장을 거듭한 명성답게 남안산 IC를 지나자마자 산업 근대화를 이룬 흔적들로 숨이 턱턱 막힌다. 주변 환경이 답답하다고 하면 산업일꾼들에게 혼쭐이 날지 모르지만 쾌적한 도시에서 지내다 온 나로서는 딴 세상에 온 듯하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할 정도로 새삼 놀란다. `이곳에는 아무나 출입하는 곳이 아닙니다, 고생 안 해본 사람, 편하게 먹고살아 온 사람, 밑바닥 삶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입장이 곤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딸아이는 제약회사에서 면접을 본다. 이력서를 이력이 나도록 쓰고,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수없이 찾아다닌다. 자기 자신도 능력이 있으니 뽑아 달라며 날을 세운다. 졸업이 가까워져 올수록, 면접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는 초조해한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이번 면접은 어느 정도 자신 있다 하면서도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식품을 전공했으면 그쪽 분야를 알아보지 그래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았는데 뭐그리 급하다고. 이력서를 보니까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시고 오빠도 취업한 걸 보면 집안 사정이 몹시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더군다나 청주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굳이?”

면접관의 말은 딸아이가 세상 때가 묻지 않았다는 거다. 공장지대에서 숨 쉴 수 있느냐 묻는 거다. 근무하다 보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날도 많은데 보아하니 이겨낼 것 같지 않아 보이나 보다.

딸아이가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회사 관계자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줬다고 했다. 그것은 친절이라기보다 딸아이에게 힘들고 고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며 넌지시 위로하는 것 같다. 생전 안 해 본 일 할 수 있느냐고 아이에게 따져 묻는 거나 다름없다. 발효공학을 전공하였으니 미생물 연구와 유전자 조작 분야에서 점차 적응해 나가겠지만, 그것보다도 공장 지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며, 삭막한 환경 속에서 며칠 못 버티고 물러날 것으로 보였나 보다.

면접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딸아이가 한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흡수력이 있어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어요. 선배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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