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빈 지갑이다
문제는 빈 지갑이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2.26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국민이 시간이 없어 돈을 쓰지 못하는 나라?

불황의 원인이 이렇게 행복한 나라의 대책은 간단하다. 휴일과 휴무를 최대한 늘려 소비자들에게 돈 쓸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줄여서 국민을 소비에만 열중하는 실업자로 만드는 것도 방편이 될 것이다.

엊그제 정부가 내놓은 내수 활성화 대책을 보면 우리 정부가 작금의 경제난을 보는 시각이 너무 한가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월 한번씩 금요일을 `가족과 함께 하는 날'로 정하고 오후 4시 퇴근을 장려하겠단다. 직장인들이 일찍 귀가해 가족과 함께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며 `즐금'을 보내라는 취지다. 호텔과 콘도 요금 인하를 유도하고 골프장도 활성화 해 여행과 레저를 통한 소비를 이끌어 내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5월 2일과 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9일 황금연휴를 만드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의 국민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국민의 피로감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내수 진작을 겨냥한 휴무 확대라면 번짓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바빠서가 아니라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이다. 비관적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책은 소득을 늘리고 보편적 소비가 가능해지도록 소득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악이라는 고강도 노동의 과실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5.6% 줄었다. 감소폭이 사상 최대라고 한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8000원으로 2.1% 늘었다.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위 10%의 비중도 48.5%로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 빈민층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층은 더 풍요로워지는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자는 100만9000명이다. 1월달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10년 이후 7년 만이라고 한다. 반면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 60만명에 달했다.

가계부채도 작년 말 1344조원으로 연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4분기에만 48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채무의 질도 크게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이랍시고 1금융권 대출에 손을 대 은행들이 문턱을 높이자 가계채무가 이율은 세지만 대출심사는 헐거운 상호금융·새마을금고·보험사 등으로 떠밀린 것이다. 이제는 살인적 고금리의 대부업체들이 입맛을 다시며 정부가 2금융권에 메스를 대길 기다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정부의 국세 수입은 243조원으로 전년보다 25조원이나 늘었다.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도 8조원에 달한다. 대다수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음하는 와중에 세금을 25조원이나 더 거둬들였다니 기가막힌 재주다. 세금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이 여전한 걸 보면 서민의 고혈만 짜낸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곳간이 이렇게 넘쳐나니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헤아리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호텔과 콘도, 골프장 활성화에 재산세 경감 등 세제 혜택을 펑펑 지원하겠다고 한다. 고속철도를 조기 예매하면 할인 혜택도 듬뿍 준단다. KTX를 타고 호텔서 묵으며 골프를 치는 휴일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구경만 하다가 인센티브로 들어간 세금만 부담하라는 얘기다. 9일 황금연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 근로자들에겐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서민들이 복권 구입에 쓴 돈이 자그마치 3조8000억원이다. 전년보다 수천억원이 늘었다. 경제 부처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정책이 아니라 뜬구름에 의지하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세금을 수십조원씩이나 더 짜내는 재주를 일자리와 소득 창출, 경제 불평등 개선 등에도 발휘해 서민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정책을 일궈내길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