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만 남았네
건물만 남았네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7.02.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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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권진원

며칠 전 오랜만에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세상의 복잡함을 뒤로하고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 문득 겨울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서해는 충청도에서 가까워서 자주 갔었고 동해는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라 남해안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했습니다.

예전에는 거리상 참 가기가 어려웠는데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부터는 한결 가기 수월해졌습니다. 약 7~8년 전쯤 남해바다의 해안을 따라 거제, 통영, 남해, 순천을 아주 천천히 돌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모습들을 그려보았습니다. `얼마나 변했을까? 옛날 그대로일까? 아직도 아름다운 곳일 거야?' 등등 기대와 호기심에 부푼 마을을 안고 남해군의 몽돌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한 바닷가 전경에, 잔잔한 파도와 시원한 바닷바람에 옛 추억의 정취가 고스란히 전해왔습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그곳이 너무나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마을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곳은 과거 `기봉이'라는 영화의 촬영지로 석축을 쌓아서 계단 형식으로 논을 일군 다랭이 마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시골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갔을 때에는 논이 있던 자리는 몇 곳 되지 않고 그 자리를 메워서 카페와 성점들이 들어섰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편의 시설이나 식당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 들렀던 독일마을도 초창기 한국 정착촌으로 파독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살던 가정집이 그들 대신에 레스토랑과 찻집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마을 전망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옛모습 그대로이지만 집들 앞에 가면 이제 가정집이 아니라 건물은 그대로 둔 상점들만 남아있었습니다. 통영의 벽화마을 동피랑에도 하나 둘 집들이 카페촌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후 다시 그곳을 찾으면 카페와 식당으로 가득 찰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이름난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처음의 아름답고 사람 사는 냄새 났던 경치와 마을들은 온데간데없고 번쩍이는 네온사인들이 즐비하고 먹고 마시고 숙박하는 건물들의 행렬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불편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찾은 전주의 한옥마을도 대부분 찻집과 막걸리, 파전집으로 변해버려서 인상을 찌푸리게 하였습니다.

옛것이 무조건 좋다거나 옛모습이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빨리 사라져 버리는 우리네 것들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역마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몇 년 반짝 사람들 모였을 때 돈이나 벌어야지 하는 근시안적 사고와 계획으로 벌어진 천편일률적인 관광지 조성사업은 이제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곳에 추억을 되새기며 그 경치와 전경을 보러 갔을 때 아직도 여전히 옛것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이길 희망해봅니다.

빨리빨리 만을 외치며 무조건 부수고 세우고 깎고 자르던 지난 수 십 년의 세월에서 이젠 서로 함께 아끼고 보존하고 유지하고 이러가는 세상으로 조금은 여유 있는 우리네 삶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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