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善意)와 적법성
선의(善意)와 적법성
  • 안태희 기자
  • 승인 2017.02.22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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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요즘처럼 `선의(善意)' 논쟁이 뜨거운 적이 없다. 정치적인 얘기는 내버려 두기로 하고, 일선 지방자치단체 고위직 공무원의 행태에서 법적 테두리를 위협하는 `선의'는 수많은 논란과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최근 청주시 4급 공무원이 100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있다는 의혹은 21세기를 사는 성인남녀에게 우리나라 일부 고위직 지방공무원의 일탈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공무원은 지난해 8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부하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을 먼저 서술하는 방법을 택했다. 출생년도와 고향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가면서 자신을 잘 드러냈다. 문제는 자신이 보낸 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본인을 소개해야 하는 직원들이 고민에 빠진 것이다. 20가지 항목중에서 `외모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IQ`, '주량', `주말에 무슨 복장을 하는지' 등을 선뜻 응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부공무원은 10년 넘게 이런 행태로 직원들과 소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제보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상급자가, 그것도 직속상관이 자신을 드러내고, 너도 똑같이 자신을 드러내라는 요구를 `소통'이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낸 사람은 `내 글을 참고하되, 쓰고 싶은 내용만, 보내고 싶은 사람만' 회신해달라고 했다지만, 사람 마음 알 길 없는 직원들의 고민이나 당혹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다. 더욱이 이 문제가 보도된 이후에도 이 간부공무원이 보인 태도는 상식이하였다. 자신의 `선의'가 왜곡됐더라도 법을 어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다,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다면 즉각 개인정보 수집을 중단했어야 하는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도 모두 폐기해야 하고 앞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야 하는게 마땅한데도 `요지부동'이다. 고민이 깊다고만 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100명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때와 지금처럼 함구하고 있는 태도는 그야말로 `불통'이라고 할 수 있다.

청주시장의 태도도 논란거리다. 불과 5개월 전에 이런 일을 저질로 경고를 받은 사람에게 청주시장은 다시 `구두경고'를 했다고 한다. 한번 경고했는데, 문제를 다시 일으켰다. 그런데 또 구두경고만 했다. 뭔가 신상필벌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고, 공직기강이 바로 서겠느냐는 생각이 앞선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인권에 대한 자의적이고, 박약한 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은 뜻을 갖고 있으니 상대방도 모두 이해해줄 것이라는, 아니 이해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넣는 공직문화의 심각한 사생활 및 인권침해의 현주소가 드러난 것이다.

공무원 사회가 표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것에서 표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하직원들의 인권과 개인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집하는게 용인된다면, 청주시민들의 인권과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받을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하다며 제보하는 공무원들이 잇따르는 것을 보면 이번 사례는 결코 가벼운 해프닝이 아니다. 간단하게 웃고넘길 문제도 아니다. 부하직원의 부당한 개인정보 수집은 물론 사생활 및 인권침해에 대한 죄의식 없는 고위공무원의 윤리의식 또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청주시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해 공직자들이 상사의 주문으로부터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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