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그리운 숲
그리운 사람 그리운 숲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7.02.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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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의 시 백화(白樺)


집 마당에서 앞산을 건너다보면 북향인 골짜기에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발치에서도 그 수려함이 촌티나지 않고 세련되어 보여요.

자작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위에 강한 나무입니다. 제가 나고 자란 중부지역에는 자작나무가 자생하지 않아요. 이남의 자작나무는 대부분 식재한 것입니다.

이곳의 뒷산에는 참나무가 우점종이라 민초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참나무에 의지해 살았지요. 참나무로 불을 때고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고 참나무 열매로 배고픔을 이겨내기도 했어요.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쪽에서 사는 나무라 이북의 산은 자작나무 숲이 대부분입니다. 평안도 정주 땅에서 유년을 보낸 시인 백석의 고향땅도 바로 자작나무 숲으로 이뤄진 산골입니다. 나무에 의지해 살기로는 그곳도 마찬가지라서 그곳 민초들은 자작나무에 의지해 살았지요. 자작나무 장작에 자작나무 움막에, 자작나무가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고 생각하여 죽어서도 자작나무 껍질로 몸을 싸서 묻었답니다. 단군신화의 단이 박달나무 단자를 써서 박달나무라고 한다지만 <밝>달나무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밝은 나무, 즉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예요. 그나저나 박달나무도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이니 백두산의 나무가 자작나무니 박달나무니 하는 걸로 시비할 건 없습니다.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척일 테니까요.

보통의 나무들이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리는 것에 비해 자작나무는 긴 잎자루를 이용해 스스로 바람을 만들지요. 어쩌면 맨 처음 바람은 자작나무 이파리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작나무의 작은 떨림에서 시작된 바람이 나비효과처럼 번져 이곳에 올 때쯤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자작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춥지만은 않은 것은 자작나무, 백화를 떠올리자마자 동시에 떠오르는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 때문입니다.

백석의 시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자작나무의 수피처럼 흰색입니다. 그는 평생 빼앗긴 조국과 떠나온 고향 땅과 사랑하는 자야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백석과 자야의 잠깐의 이별은 분단으로 인해 평생의 이별이 되고 말았지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이라는 말은 똑같이 <긁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답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속에 긁어 새기면 그리움이고 도화지에 새기면 그림이 되는 거지요. 백석처럼 글로 새기면 시가 되고요. 그러니 세상의 모든 글과 그림은 그리움이에요.

하얗게 잊었다 하기도 하고 까맣게 잊었다 하기도 하잖아요. 그중에 하얗게 잊었다는 말이 바로 그리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하얗게 잊은 건 마음속에 날마다 첩첩이 새긴 사랑이 오랜 세월 천천히 색 바래고 남겨진 바탕색이기도 해요. 자작나무 그 하얀 수피에서 아련하고 처연한 그리움이 읽혀지는 건 그 때문일까요? 자작나무 하얀 수피에 편지를 써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백석과 자야는 평생 헤어져있으면서도 이별을 완성하지 않은 채 빛바래도록 그리워하며 지냅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운 사람 그리운 숲. 자작나무 숲. 봄이 오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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