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지키는 공무원과 외래어 남용하는 정부
국어지키는 공무원과 외래어 남용하는 정부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7.02.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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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

얼마 전 본보에 실린 `올바른 공문서 작성 족집게 선생님'이란 기사가 큰 울림을 주었다.

옥천군 군북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정윤정 주무관(여·45)이 그 주인공인데 그의 우리말 우리글 사랑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것도 현직 공무원이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뭘 그리 요란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글을 아끼고 수호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들이 국적 불명의 외래어들을 남발하고 있고, 외래어를 써야 유식하고 근사해 보이는 조직문화 속에서, 더욱이 자신의 업무를 보면서 틈틈이 잘못된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로잡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윤정 주무관은 옥천군청 `맞춤법 도우미'를 자처하며 2004년부터 군청 내부 전산망에 `우리말 사랑방'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서식이나 공문서에서 맞춤법 위반 등 하자가 발견되면 `우리말 사랑방'에 이를 바로 잡아 올리는데 지금까지 올린 게시글이 1,000건이 넘는다니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군청직원들도 그런 그를 `국어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른다 하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정 주무관은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3일엔 게시판에 `설 맞이'와 `설맞이' 중 어느 것이 맞느냐는 문제를 올리면서 `맞이`는 어떠한 날이나 일, 사람, 사물 따위를 맞는다는 뜻의 접미사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국어사랑 면모를 보여준 단적인 예라 하겠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국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국문학도는 아니지만 공무원이 된 후부터 인터넷을 이용해 한글 맞춤법을 공부하고 공문서를 작성할 때마다 한글 맞춤법 검색 사이트와 인터넷 사전을 통해 오류를 점검하며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 올랐다.

동료들이 맞춤법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한민국 사람이 올바른 한글 사용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공문서를 작성하는 선후배 공무원들과 바른 우리 말 사용을 공유하고 싶어서 `지적질'을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바른 국어사용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해 공문서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신이 맡은 본연의 업무도 과중한데 과외로 한글 지킴이 일까지 하니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현행 국어기본법 제14조는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가 이 법을 무시로 위반하고 있어 이를 고발한다. 상시모니터링시스템, 사전컨설팅감사. 워킹맘대디 지원프로그램, 챌린지운동, 매칭 네트워크, 청년취업성공패키지사업, 에너지바우처, 이노비즈, 농산품스마트소비아카데미, 레지던스 프로그램지원, 스토리창작클러스터, 사이버스마트 뮤지엄 등 국적불명의 정책명들을 양산하여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글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조차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바우처, 트랜드, 그린닥터, 팸투어, 카테고리, 게스트하우스 같은 외래어를 쓰고 있으니 기가찰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SNS나 인터넷 등을 통해 양산·유포되는 비속어·채팅어·축약어들을 쓰는 정신 나간 공무원도 있다.

이처럼 외래어와 비속어 등을 남발하는 공무원은 국어기본법 위반으로 징계하고, 정윤정 주무관처럼 우리말을 갈고 지키는 공무원은 상찬해야 모국어가 산다.

거리의 간판들과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 이름이 온통 외래어투성이고, 연예인들 이름도 꼬부랑말 천지다. 정부가 그 모양이니 누구를 탓하랴.

언어는 나라를 유지·발전시키는 민족정신의 정수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정윤정이 들불처럼 나와야 국어가 산다. 국어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 넋 나간 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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