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를 위한 하루키의 조언
신규교사를 위한 하루키의 조언
  • 양철기 서원초 교감(박사·교육심리)
  • 승인 2017.02.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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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서원초 교감(박사·교육심리)

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 일본 센트럴리그 개막전에서 야쿠르트의 힐튼이 좌중간 2루타를 때렸다.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7)는 의자도 없는 외야석의 잔디 비탈에서 완벽하게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잔디 위의 하얀 공,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 띄엄띄엄 박수소리가 났다. 하루키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하루키는 이 순간을 `epiphany(현현, 顯現: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진실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라고 표현했다.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뀌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서점에 가서 원고지와 2만 원짜리 만년필을 샀다. 설레는 가슴으로 주방의 식탁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반년 만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간됐다. 그리고 35년간 직업인 소설가로 매일 한 시간씩 뛰고 원고지 20매 이상을 채워 쓰고 있다.

하루키만큼 오해받아온 작가도 드물다. `하루키스트'라는 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세계적으로 독자가 많으면서 평론가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아 왔지만, 하루키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있다. 하지만 하루키는 작품 활동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공개하는데 인색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가 최초로 자신의 견해를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소박한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문인이라는 허상을 벗어던지고 생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직업 일반론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하여 새로운 직장과 직업을 가지고 출발하는 신규교사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하루키에게 있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기회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과감하게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를 택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는 직장과 직업을 구분하였다. 그는 어느 직장, 어느 부서, 어떤 직책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일(직업)을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직장이 조직이라면 직업은 내가 쌓아가는 전문성과 관련되며, 확실한 직업을 가질수록 직장에서 더 오래 생존하고 직장을 떠나서도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하루키는 35년을 직업인 소설가로 생존했다.

교직은 평생직장으로 인기가 높다. 그렇다면 직업인으로서 교직은 어떠한가. 하루키가 35년간 소설을 써 왔듯 교사가 35년간 국어과목을 가르치고 퇴임을 한다면 청주시내 입시 학원들이 그분을 모셔가려고 줄을 서야 한다. 초등학교 교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직업과 취미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반 기업체보다 개인 시간이 많기에 취미활동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게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건강한 삶이다. 취미생활을 위해서 일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직업인이 아니라 어설픈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루키가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자신이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했다. 교단에 들어오는 선생님들 또한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가장 많이 달리기 위해 가장 느리게 달리는 것을 택한 소설가처럼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계속 달릴 수 있다. 하루키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책상에 앉아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생각을 굴릴 때라고 한다.

누구나 링에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 오래 버티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제 직업인이자 직장인으로 링에 오를 신규선생님들, 링에, 어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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