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r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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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2.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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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요즘은 `예'라는 말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말은 변하는 법, 옛날 어법으로 아이들을 강요하다가는 꼰대소리 듣기 십상이니 같이 생각해보자.

최근 젊은이들은 영어식 표현대로 `집에 안 가지?'라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하는데, 전통어법에서 그것은 `아니요, 가요.'를 뜻하지만, 가끔 `아니오, 안 가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래서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뒤의 어법은 완전히 영어식이지만, 어찌하랴, 이 사회가 무식하게 영어를 강조하니 말이다.

우리말 어법부터 보자. 우리말은 상대방의 의중에 따라 대답해야 한다. 내가 중심이 아니다. `집에 안 가?'라고 할 때 먼저 말한 사람이 우선이라서 `집에 안 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을 그대로 인용해서 `예, 안 가요'라고 답해야 한다. 집에 가려면 `아니요, 가요.'라고 질문자의 답을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영어는 내가 기준이다. `집에 안 가?'라고 물으면 상대방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내가 가면 `응, 가.'라고, 안 가면 `아니, 안 가'라고 답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주체와 객체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상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영어가 일관적이긴 하다.

그것을 철학은 앞뒤가 맞는다는 뜻에서 `일치성'(coherency)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응답에서 부정했으면 그 뒤를 잊는 문장도 부정사가 나와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Yes, I can.'이거나 `No, I can not.'이어야지 `Yes, I can not.' 또는 `No, I can.'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면서 우리말에 없어 힘들게 배우는 것이 `그래'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긍정으로 말하건 부정으로 말하건 `그래'라고 답하면 그만인데, 영어는 상대방이 긍정으로 말하면 긍정으로 호응하고(either), 부정으로 말하면 부정으로 호응(neither)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좋게 말하고 싶으면 `역시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관계의 언어야!'라고 부추기면 되고, 외국어를 좀 해서 유럽어를 좋게 말하고 싶으면 `역시 단순명료하고 일관되게 긍정은 긍정, 부정은 부정하는 명백한 언어야!'라고 칭찬하면 된다.

좀 더 크게는 서양논리학은 죽어라고 변하지 않는 일관성을 유지하게 위해 애쓰고(동일률 identity의 원리), 동양의 사고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나는 네 앞에서 변함으로써 관계를 맺겠노라는 태도(음양의 상보성의 원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혼자 가고, 함께 가는 차이다.

예를 들어, `이리 와'라고 할 때 우리는 재빨리 `온다'를 `간다'로 바꿔 `응, 갈게'라고 답한다. 이거, 정말 쉽지 않은 고급언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가 `빨리 와'라고 할 때 `응, 빨리 갈게'라고 대답하는 시기는 벌써 말을 좀 할 때다. 그전에는 `빨리 와'라고 하면 `응, 빨리 올게'라고 말한다. 중국어는 아직도 우리말처럼 바꿔 말하지 않는다. `이리 오시오'(來)는 `예, 옵니다'로 받는다.

요즘 스마트폰에서 `변경사항을 저장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예시가 헷갈린다.

과거에는 더 그랬지만, 요즘은 꽤나 정교해져서 `취소, 저장 안 함, 저장'으로 세분되어 있음에도 머뭇거리게 된다. 저장하거나 안 하는 것 외에도 취소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의 작업을 놓고 `취소'한다면 변경사항을 취소한다는 것인지 전화번호를 모두 취소한다는 것인지도 헷갈리고, `저장 안 함'은 행여나 이 전화번호를 빼버리겠다는 것 같아 무섭다. 열심히 경우의 수를 눌러보니 `취소'는 저장하지도, 저장하지 말지도 말고 되돌아가는 것인 줄 지금서 알겠다. 다시 작업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데, 지나친 배려가 부담스럽다. 그냥 처음으로 가면 안 될까? `응?'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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