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자연·건축을 말하다
장현석의 `공간건축, 시간예술'을 읽고
인간·자연·건축을 말하다
장현석의 `공간건축, 시간예술'을 읽고
  • 홍강리<시인>
  • 승인 2017.02.15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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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홍강리<시인>

대상(隊商)들이 일렬로 줄지어 낙타에 짐을 싣고 지평선 너머 모랫길로 아득히 멀어져간다. 대륙의 서안 실크로드에 황혼이 내려앉는다. 장현석 여행이야기의 출발지 광경이다. 건축가 장현석이 세계건축을 둘러보고 인간·자연·건축에 관한 생각을 사진과 함께 화려한 천연색으로 엮어 만든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를 보는 순간 `남의 것인데 내 것'인 양 눈에 익어 반가움이 눈물처럼 왈칵 솟는다. 누구나 한 번쯤 다녀온 여행지인데다 우리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글쓴이의 생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을 순례하면서 저자는 그날 본 건축물과 그 건물이 존재하는 도시와 주변 환경에 대한 느낌이 가장 생생하게 간직된 바로 그날 밤 그가 묵는 여사에서 기행문을 쓴다고 한다. 그 같은 작업 관성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눈매를 확인하는 자기 수련의 일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건축철학과 문명관으로 건축물과 건축사의 맥락을 포착하여 읽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전문인으로서 건축 주제에 대한 이해는 물론, 건축물 그 자체에 무한한 미래 세계를 투영해내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일 수도 있다.

또한 건축가가 건축에 대한 눈을 좀 더 넓게 열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시야를 확대, 혹은 정밀화하여 자기화(肉化)하려는 의지의 결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문명과 정신세계를 현존의 도시와 건축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작가적 직관과 번득이는 영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 이 때문이라 판단된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한 시대의 고비 고비를 살아온 인간들이 가장 절실하게 추구한 내면의 세계가 물질의 형상으로 구현된 건축과 도시임을 명문화하면서 4파트로 나눠 옛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첫째 파트에서는 동서양을 이어주던 기원전 고속도로라 말할 수 있는 실크로드를 체험하면서 중국의 서안성, 화청지,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둘러본다. 그리고 거대한 지상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명사산의 월아천부터 향비봉, 가만청진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둘째 파트에서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곳곳을 훑고 나서, 셋째 파트로 넘어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에서 지금도 신들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신비로운 환상을 목도한 외코카사스의 여행담과 영상을 담았다. 마지막 넷째 파트는 이탈리아 이야기다. 밀라노, 베르나,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폼페이, 카프라 섬을 여행하면서 대륙으로 용약하는 이태리의 기개를 눈썰미 있게 엿본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기도하는 가톨릭 신앙을 명상하면서 건축과 도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 보였다.

저자는 건축가 특유의 안목으로 이러한 `공간'을 독창적으로 해석함은 물론, 건축은 인간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형문자요 거대한 기호학이라고 역설하고 싶은 눈치가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은 장현석의 `공간 건축, 시간 예술'을 보면서 역사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문명과 문화의 논리를 수렴하는 천부적 감각이 예사롭지 않음을 짚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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