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헤치고 피어난 성급한 봄꽃 `노루귀'
눈을 헤치고 피어난 성급한 봄꽃 `노루귀'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 승인 2017.02.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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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봄을 기다리기엔 마음이 너무 급했을까? 성급한 봄꽃 소식이 멀리서 들려온다. 성급하게 핀 놈들 하나 둘 찾으러 떠나 볼까? 어쩌면 헛고생일지도 모를 일. 게다가 입춘은 지났지만 봄이 오기엔 아직 멀었다는 듯이 추위도 한창이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기엔 내 마음이 더 급하다. 떠나보자. 앙증맞은 꽃, 눈을 헤치고 나온다고 파설초라고도 하는 노루귀를 찾아서.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맑은 눈에// 도는/구름. (청노루/ 박목월)

이 시에 나오는 청노루는 상상의 동물일까? 아니면 털빛이 푸르스름한 잿빛의 사향노루를 말하는 것일까? 상상의 동물이든 사향노루이든 노루가 주는 이미지는 평화로운 산골의 서정적인 정취이지 않을까? 우리말에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 `노루가 제 방귀에 놀라듯',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 `노루잠에 개꿈이라',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린다', `달아나는 노루 보고 얻은 토끼를 놓쳤다'등 노루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노루오줌, 노루삼, 노루발풀, 노루참나물, 노루귀 등 식물의 이름에도 노루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 있다.

노루와 관련된 속담과 풀 이름이 많은 것을 보면 예전에는 우리 산야에 노루가 많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깊은 산이나 한라산에서나 볼 수 있는 노루이지만 노루귀는 양지 바른 산 어귀에서 비교적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기도 하지만 교만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사람은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보송보송한 솜털을 볼 수가 없다.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는 자만이 노루귀의 앙증맞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고, 밝고 따스한 빛이 있다면 활짝 핀 꽃은 물론 줄기와 노루귀 닮은 총포에 난 미세한 잔털의 환상적인 흔들림을 볼 수 있다.

잎이 피어나는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아 노루귀라고 한다. 그러나 꽃잎같이 생긴 꽃받침 조각을 받치고 있는 총포의 모습이 보송보송한 솜털이 난 노루의 귀를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노루귀는 꽃잎이 없으며 흰색, 분홍색, 청색 등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 꽃받침 조각으로 자생지에 따라 색이 다양하다. 석 장의 총포가 여러 장의 꽃받침 조각을 받치고 있다. 노루귀는 이른 봄 키가 큰 나무들이 잎을 피우기 전에 꽃부터 피운다. 꽃이 수분이 되고 열매가 익으면 꽃대가 구부러지면서 가능한 먼 곳을 향해 씨를 땅에 묻는다. 남해와 제주도의 척박한 지역에는 작은 새끼노루귀가 자생하며 습도가 높고 비옥한 울릉도에 섬노루귀가 자생한다.

어떻게 여기 와 피어 있느냐/ 산을 지나 들을 지나/ 이 후미진 골짜기에// 바람도 흔들기엔 너무 작아/ 햇볕도 내리쬐기엔 너무 연약해/ 그냥 지나가는 / 이 후미진 골짜기에// 지친 걸음걸음 멈추어 서서/ 더는 떠들지 말라고/ 내 눈에 놀란듯 피어난 꽃아 (노루귀꽃/김형영)

노루귀처럼 추운 눈 속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꽃들은 안다. 때가 되면 더 많은 꽃이 만개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가슴에도 꽃들이 활짝 핀 따스한 봄이 오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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