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님의 침묵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2.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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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개울 건너에 매화가 온통 붉게 피어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에 둘이는 그 꽃들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꽃물로 물들인 호수를 그린 그림 같았습니다.

엄마는 “와 꽃이 참 곱다”하시며 그 꽃을 꺾으러 가신다고 개울을 내려갑니다. 나는 붙들어 말렸지만 살며시 뿌리치고 물을 건너갑니다. 밭에 이르러 나를 돌아보며 엄마는 들어가라는 손사래를 칩니다. 이윽고 뒤돌아선 엄마 앞에 꽃길이 펼쳐지더니 그 길로 사라지셨습니다. 나는 점점 작아져서 점이 되어 꽃 숲으로 없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엄마를 부를 생각도 않고 왜 지켜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알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왠지 온종일 그 꿈이 마음에 매달립니다. 잠에서 깬 나는 깨기 싫은 꿈을 꾸다가 방해받은 것처럼 긴 꼬리의 여운이 남았습니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양원에 들러 엄마를 뵈었습니다. 엄마가 이곳에 계신지 막 일 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이 박꽃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빛에 비친 엄마는 달빛이 박꽃 위로 내릴 때처럼 눈부셨습니다. 여느 때보다도 더 환하게 미소를 띠며 잘 가라고 눈 배웅을 해주는데 나는 마음이 왜 그렇게 착잡하게 가라앉던지요. 간신히 마음을 끌고 집에 왔습니다.

나를 웃는 미소로 보낸 엄마는 5일 만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나와 아프지 않게 이별을 하려고 그렇게 웃어 주셨나 봅니다. 이제, 손이 차다며 내 손을 잡아주던 엄마를 볼 수가 없습니다. 엄마하고 아무리 크게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엄마는 쭈욱 침묵 중입니다.

93세 노인의 장례는 호상(好喪)이라며 슬퍼하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보고 싶어도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오열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엄마께 고별사를 올립니다.

`한량인 지아비를 만나 혼자서 사 남매를 키워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시옵소서.'

한 여자로서의 희생한 삶이 짠하게 전해집니다.

엄마는 요양원에서도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었으나 자식사랑만큼은 신앙이다시피 한 분이었습니다. 아마도 늘 똑같은 기도를 올렸을 테지요. 아들들을 축원하고 하나인 막내딸이 긴 시간을 차지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나는 엄마에게 늦게까지 아픈 손가락이었으니까요.

삼우제를 끝낸 다음 날은 눈이 흠뻑 내렸습니다. 지인들은 엄마가 좋은 일만 만들어 주실 좋은 징조라고 합니다. 눈을 감아서까지 놓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하는 엄마의 대단한 사랑일 듯합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님의 침묵이라는 한용운님의 시가 엄마가 가신 날로부터 지금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귓가에 맴돌기도 하고 눈앞을 아른거리기도 합니다. 시의 배경에는 언제나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매화나무 숲을 향하여 난 좁은 꽃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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