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 없는 사회를 위해
장발장 없는 사회를 위해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7.02.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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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

슬프다. 아니 슬프다 못해 참담하다. 혹한인데도 난방비 때문에 잠자는 시간에만 연탄불을 피우고 사는 달동네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실내온도가 영하 4도나 되는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쪽방촌 사람들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가 청주시 흥덕구의 한 마트의 냉동고에 보관 중인 냉동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훔쳤고, 마트 주인이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A씨는 같은 달 27일 또다시 냉동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훔치다 주인에게 덜미를 잡혔다. A씨가 배고픔에 지친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이곳에서 훔친 물건은 냉동 피자 7개와 아이스크림 4개로 5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청주시 흥덕구 한 마트 앞에서 빵을 싣고 온 배달차가 빵을 분류하는 사이 B씨가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빵 3~4개를 훔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있던 B씨는 눈앞에 펼쳐진 먹음직스러운 빵에 순간 이성을 잃어 절도한 것이다. B씨의 주머니에는 단돈 1000원이 없었다.

설 전날인 지난달 27일에는 부산 사하구의 한 마트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C씨가 허기를 달래려고 막걸리를 훔치다가 붙잡혔다. 그는 조선소에서 실직된 20대 청년이었다.

세 사건은 얼마 전 본보에 실린 `배가 고파서, 생계형 경범죄 증가'라는 제하의 기사와 `20대 청년이 수돗물로 배를 채우다니 말이 됩니까'라는 기사 내용이다.믿기지 않지만, 믿고 싶지 않지만 이들은 모두 있어서는 안 될 이 시대의 장발장들이다. 명색이 세계12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인데, 그것도 너무 잘 먹어 비만국가가 된 나라인데 안타깝게도 이처럼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양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5,489건의 절도사건 중 424건은 피해 금액이 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401건은 피해 금액인 10만 원 이하였고, 미수에 그쳐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도 300여 건에 달했다.

경찰청은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1급지 경찰서에 운영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전과가 없는 범법자들을 대상으로 처벌 감경 여부를 심의해 구제해주고 있다.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로 불릴 만한 좋은 시책이라 상찬한다.

아무튼 절대빈곤과 생계형 범죄는 국가와 지자체의 공동 책임이다.

겨울이 춥다고 따뜻한 나라에 가서 겨울을 나거나 겨울레저스포츠를 즐기는 계층들은 물론 난방이 잘된 주택에 살아 한겨울에도 반바지차림으로 지내는 사람들은 쪽방촌과 달동네 사람들의 고충을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주는 급식 우유가 맛이 없다고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아이들과 그 학부모들은 장발장들의 배고픈 서러움과 처절함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을 무능력자라고, 시대의 낙오자라고 폄하하거나 힐난할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이 시대가 낳은 양극화의 희생양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 못 한다는 말은 옛날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은 장발장을 먹여 살릴 국력을 갖고 있고, 나름 복지시스템도 촘촘하게 갖추고 있다.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이다.

장발장이 될 개연성이 있는 사람들과 겨울나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정부와 지자체와 지역공동체가 수시로 찾아내 비극을 미연에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빵과 연탄 정도는 국가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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