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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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수필가>
  • 승인 2017.02.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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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수필가>

할 일 없이 휴대폰을 뒤적이다 폰이 바뀔 때마다 따라다닌 영화를 한편 발견했다.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 그것인데 아트버스터(artbuster)로 분류된다. 영화와 블록버스터의 합성어로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를 뜻하는 신조어다. 소수의 영화팬들만 보던 예술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트버스터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싱어송라이터 애인을 둔 그레타는 애인이 영화음악으로 뜨면서 일약 스타가 된다. 메이저 음반회사와의 계약으로 뉴욕 행에 동행하지만 다른 여자와 눈이 맞은 애인 때문에 실의에 빠져있다. 또 다른 주인공 댄은 유명 음반 프로듀서였으나 아내의 외도로 시작된 별거와 방황으로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치욕을 겪으며 루저의 생활을 이어간다. 두 사람은 음악 바에서 조우하게 되고 댄은 그레타에게 음반제작을 제안하게 된다. 미친 듯이 아름답고 엉망진창이라는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삼아 녹음하며 조금씩 본래의 자아로 돌아간다. 상처받은 두 영혼은 우정을 나누며 각자의 상처를 나름의 방법으로 치유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상처 난 아픔을 음악이라는 치유의 도구로 다시금 새롭고 단단한 삶으로 거듭난다. 댄은 음악을 통해 아내와 다시 결합하지만 그레타는 이미 대중의 인기와 화려한 조명에 도취된 애인을 두고 떠난다. 같은 음악을 통해 일어난 치유가 다시 결합하게도 하고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요즘, 우연한 기회로 예전의 밴드 음악을 다시 듣고 있다. 치기어린 과거에 대한 낯 뜨거운 기억이 많은 내게, 그래서 예전에 부르던 노래나, 듣던 음악은 의식적으로 피하곤 했는데 다시 밴드 음악을 듣게 되면서 그 때의 풋풋함을 추억하게 했다. 그 날들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 했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 경솔했던 나의 모든 선택을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근무하던 병원의 알코올 환자가 퇴원하기 전 날, 원무과에 찾아와서 그동안 고마웠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매일 아침마다 사무실에 맡겨놓은 휴대폰을 찾아 누나에게 연락을 했으나 거절등록을 해 놓은 것 같다며 서운해 했다. 그럴 때 마다 누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며 병원 유선전화로 대신 전화를 걸어주곤 했다. 그러나 결국 병원 전화도 받지 않게 되자 퇴원해서 누나를 직접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술을 먹고 가족을 힘들게 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인연을 끊을 정도로 심하게 괴롭히지 않았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었다. 평소에는 말이 잘 통하던 누나였기에 이런 행동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상처 준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다고 했던가. 그리고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을 힘들게 한 동생이 싫어 혈육의 인연을 끊고 싶은 누나와 그럼에도 자기 합리화로 일관한 동생은 어느 정점에서 무엇으로 만나 치유가 될까. 남매의 만남이 험악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누나가 혹시 상처를 받았다면 그녀의 말을 충분히 들어줄 것을 당부하며 그의 퇴원을 도왔다.

상처는 사고다. 사고 난 현장에 머물러 있다면 재난은 현재 진행형으로 시퍼렇게 살아 있지만 수습에 집중한다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처음의 것과 전혀 다르다고 하더라도 치유된 새 힘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묵은 상처가 있다면 이제라도 치유의 좋은 도구를 찾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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