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에게도 미래를 묻자
만 18세에게도 미래를 묻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2.1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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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우리나라 대입 수능시험 영어문제 중에는 하버드와 옥스퍼드 졸업생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적지않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 졸업생들도 설설기는 이 영어시험에서 만점자가 속출한다.

각국의 수학영재들이 실력을 겨루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3위권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지난해는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다. 과학 분야서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국제지구과학올림피아드에서는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지난 8년간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따낸 금메달은 23개나 된다. 중등과정 학생들의 학력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단연 톱이다.

선거연령을 만 19살에서 고등학교 3학년인 18살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공방하고 있다. 야당들은 적극적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결사반대한다. 양쪽 모두 그럴듯한 명분과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권자로 새로 편입될 만 18세의 표심이 야당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32개국 가운데 만 18세가 되도록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OECD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똑똑한 학생들이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미숙아 취급을 받는 셈이다.

외국의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선거연령 조정은 더는 미룰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중앙선관위가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정쟁에 물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새누리당의 반론은 옹색하다. 근거 없이 청소년들의 정치 역량을 저평가한 것도 문제지만 실제와도 거리가 멀다. 이런 논리라면 선거연령이 시작되는 대학은 정치구호가 판을 치는 핫 플레이스가 돼야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오히려 낮은 투표율을 보이며 정치에 등을 돌리는 추세다.

새누리당에는 광장으로 뛰어나온 촛불들이 대한민국의 법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적지않다. 그들 주장대로 광장정치가 변칙이라면 청소년들이 제도적인 권리 행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정책에 반영하는 합법적 절차를 좀 더 일찍 학습도록 하는 것이 맞다. 독일은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고등학교 강당을 찾아가 유세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의 유세장 참석을 의무화한다고 한다. 고만고만한 정당들이 연정을 꾸려 국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치는 늘 안정적이고 학생 유권자들이 정치에 오점을 남겼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젊은 층에 대해 자신감을 상실한 새누리당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미래 세대와 담을 쌓아가면서 국민에게 미래를 맡겨달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이고 해법은 정면돌파 다.

태극기 집회에 나간 새누리당 의원들은 언론과 검찰이 공모해 대통령을 엮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탄핵 찬성이 70% 후반대서 요지부동인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국민도 공모에 가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만간 사법부도 공모자를 자처할 판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각계각층이 일치단결해 무고한 대통령을 몰아내고 있는 무도한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를 인정한다 쳐도,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서는 명색이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무능부터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에게 “정치는 우리에게 맡기고 너희는 수능시험 공부나 하라”고 말 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 청소년들은 OECD에서 공부는 제일 잘하지만 행복지수는 꼴찌, 자살률은 1등인 감옥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대학에선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공부대신 알바를 해야 하고 졸업 후에는 취직을 못 해 대출금을 연체하다 신용불량자가 돼야하는 혹독한 현실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적 비용이 블랙홀처럼 자신들의 소득을 잡아먹을 초고령사회를 등에 지고 갈 딱한 세대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마당에 수용해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새누리당이 차라리 이런 핑계를 대면 이해라도 하겠다. 수준 떨어지는 싸구려 정치 무대의 객석에 차마 고등학생까지 앉게 할 염치가 없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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