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2.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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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언제부턴가 인문학(人文學) 열풍이 불고 있다. 인문학 강좌가 넘쳐나고 고전 읽기 프로그램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자체나 대학부설 평생교육원, 공공도서관 심지어는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데서도 플라톤의 `국가'에서 부터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들어도 어렵고 힘든 강좌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소비문화의 산실인 백화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성들을 보면서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인문학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교양서적은 접어둔 채 취업 준비를 위한 수험서를 읽으며 졸업을 유예하는 것이 평상이 된 이 시대에 한 쪽에서는 이러한 인문학 바람이 인다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이렇게 개설되는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인기강사를 초청한 대중강연 위주의 교육이 대세를 이룰 뿐 차분히 책을 읽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프로그램은 잘 보이질 않는다. 열풍은 부는데 인문학이 평가를 위한 실적 쌓기나 상업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느낌이어서 씁쓸하다.

인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우리가 문(文)·사(史)·철(哲)이라고 부르는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하기도 한다. 소위 교양을 쌓는 공부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학문은 실생활에 이용하는 실용성이나 전문적인 직업에 활용하는 유용성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되어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이런 학문과 관련된 학과들이 차츰 사라지거나 엉뚱한 이름의 학과로 탈바꿈한지 이미 오래다. 교양교육이나 인문학은 사라지고 기능인 양성소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삶의 근원과 의미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과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이 인문학 열풍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고전을 읽으면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삶이 나와 어떤 연속성을 갖게 될까하는 범 우주적인 통찰을 하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서는 바람직한 통치자의 역할이 무엇이며, 시민 각자의 역할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일리아스'의 영웅들을 만나면 인간의 고뇌와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어떤 용기와 지혜를 지니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또한 나보다 먼저 살다가 떠난 이들의 삶이 나와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 속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우정이 있고, 진정한 어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들어있다. 또 자식을 잃고 슬퍼하고 꿈을 잃고 좌절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 내 앞에 닥쳐있는 절망과 슬픔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책을 읽거나 경험한 일들을 나만의 지식으로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남에게 얘기하고, 남의 얘기를 잘 들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인문학의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기강사가 수백 명의 청중을 모아놓고 하는 주입식 강연보다는 서너 명의 동네주민이 모여 책을 읽고 한 구절의 내용을 가지고 `왜 그럴까', `나 같으면 어땠을까'하고 의문을 던지며 자신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이다.

한권의 책을 교감하고 소통하며 읽는 것은 인문학의 시작이다. 특히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같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를 담고 있는 고전읽기야 말로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빚어내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며 정글의 법칙만을 강요하는 시장경제논리 앞에 신음한다. 이런 냉혹한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그것이 지금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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