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의 여행
베짱이의 여행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2.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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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베짱이들이 추운 곳을 피해 여행을 왔다. 타국에서 맞는 첫날밤이라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어디선가 들리는 요란한 경적음에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26층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거리는 벌써 분주했다. 그 모습은 자못 여름날 개미떼가 장마가 오기 전 대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대의 자가용은 여왕개미가 되어 주변의 일개미가 된 오토바이들에 의해 포위된 채 끌려가고 있었다.

전날 가이드는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 일행들을 버스로 옮겨 타게 하고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들이 이곳 베트남에서 머무르는 동안 마주할 오토바이에 대한 일이었다. 우리가 평생에 볼 수 있는 오토바이의 수를 아마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젯밤은 이곳 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자주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경적소리로 보여 주고 있다. 신호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들에게 차선은 무의미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저속을 뚫고 제대로 다닐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지럽기 시작했다.

도통 속도가 나지 않는다. 무질서하게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빠름의 대명사인 자동차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즐기러 온 거 구경이나 하자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했다. 작은 스쿠터에 남편인 듯 보이는 남자가 운전을 하고 가운데는 아이 둘, 그리고 맨 뒤에는 아내인 듯 보이는 여인이 타고 간다. 얼굴은 마냥 즐겁다. 불안한 건 구경하는 되레 우리 쪽이다. 그런 오토바이들은 한 두 대가 아니었다. 아직은 경제적으로 빈곤국인 이 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오토바이는 가족들에게 중요한 우리의 자가용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여행하는 기간은 구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베트남 또한 중국의 영향으로 음력설을 지낸다고 했다. 베트남에는 새해맞이를 위해서 액운을 막아주는 나무와, 재화가 들어온다는 황금색의 열매가 달린 나무, 크고 화려한 양난을 집안에 두고 손님을 맞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토바이 행렬 중에는 꽃나무를 싣고 가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개미가 제 몸의 몇 배가 되는 먹이를 물어 나르듯, 오토바이보다 두세 배는 큰 나무들을 싣고 달린다. 어떤 오토바이에는 황금색 금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나무가, 또 다른 오토바이에는 자잘한 분홍빛 꽃을 피운 복숭아나무를 달고 달린다. 열매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꽃이 시들지는 않을지, 저러다 사람들과 부딪혀 가지가 부러지거나 사람들이 다치지나 않을지 베짱이가 된 우리는 차 안에서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들에게도 나름의 법칙이 있어 보였다.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적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상대방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속에서도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미들이 페로몬(pheromon e)이라는 화학 물질을 분비해 정보를 교환하며, 심지어 감정조차 완벽하게 공유하듯이 저들 또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일체감이 몸에 밴 것이리라.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조용한 질서가 느껴지는 저들과, 질서가 있는 듯 보이지만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무질서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며칠 짜리 베짱이가 된 나는 속도를 내지 못하는 도로의 상황이 처음에는 못마땅했지만 이내 창밖을 향해 붙박이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차창 밖에서 벌어지는 낯선 광경 앞에 무질서와 질서의 경계는 과연 무엇일까 조용히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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