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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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7.02.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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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어요. 골짜기마다 겨우내 쌓여 있는 하얀 눈과 비탈에 선 나무들. 햇빛마저 지나치는 응달지고 후미진 곳이지만 내 마음이 온종일 거기쯤에 가 닿아있는 것은, 그 숲 속마다 죽은 듯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 때문이지요.

한때 겨울을 유배지라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모두 각자 자신의 삶을 잠시 유예시키고 수모를 견디어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무는 나무대로 빈 몸, 풀은 풀대로 죽은 듯 숨죽여야 하는 계절. 그 많던 날벌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걸 목격하는 일이 아팠었지요. 겨울은 슬펐고 암울했어요. 저항할 수 없는 불의처럼 여겨져 우울했어요,

그러나 이젠 알아요. 겨울 또한 살아가는 계절이라는 것을요. 누구도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음을요. 수모를 견디느라 빈 몸인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의 40일 금식 기도처럼 오롯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중이라는 것을요.

<바라보기>라는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바라고 보는 것, 간절함입니다.

그렇게 바라고 보다 보면 우리는 그것을 닮기도 하지요. 당신을 바라보는 것은 당신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십 년도 훨씬 전에 처음 이곳 산골로 이사를 왔을 때 이웃에 눈이 커다란 여자 아이가 살았습니다. 큰 눈이 하도 예뻐서 누굴 닮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내 눈은 우리 집 소를 닮았어요.”

세상에나... 처음에는 그 대답이 정말 우스웠지만 금방 수긍이 갔지요. 그 아이의 부모님은 소를 키우셨는데 그러다 보니 소와 한 식구처럼 지낸 거예요. 한 식구끼리는 서로 매일 바라보잖아요.

과학과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에겐 엉뚱한 생각이겠지만 가끔 우리는 가까운 것들을 닮기도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건 나비의 번데기가 주변의 색깔로 몸빛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도 같은 거지요. 초록 가까이에서는 초록 번데기로, 붉은 꽃 가까이에서는 붉은 번데기로, 지금처럼 겨울에는 나무껍질처럼 몸을 변화시키는 것처럼요. 애벌레의 간절한 마음이 자기의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자기가 처한 환경을 닮는 것, 그건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이어지는, 그건 혈연처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았어도 이어지는 마음의 발현인 거지요.

바라보는 일이 자기 자신만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예요. 바라봄의 대상인 당신을 변화시키기도 하지요. 누군가 나를 바라고 보고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잖아요. 그건 내 삶에 대한 격려이며 응원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바라보는 것들과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이어져 세상을 만드는 걸 거예요.

숲 속은 막바지 겨울 추위로 꽁꽁 얼어 있습니다. 엊그제 입춘, 그나마 추위에 지칠 무렵 입춘이라니 다행이지요. 아직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이르지만 봄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바라고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나잖아요. 봄이 나를 응원하고 있다니 신나잖아요. 나도 부지런히 숲 속을 바라고 봅니다. 숲 속 구석구석마다 없는 듯 있는 작은 생명들을 응원하는 중이에요.

마른 넝쿨 속에서 한 떼의 참새들이 쏟아져 나와 마당이 소란스럽습니다. 개 사료를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직박구리도 귀엽고요. 물까치 대가족은 무얼 먹고살까요. 지난가을 고욤 열매를 돌담에 감추는 걸 보았는데 그건 이미 다 먹고 없을 테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모두들 여전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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