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화로같이 따스한
질화로같이 따스한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2.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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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수필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마음이 허한 날은 괜히 우편함을 기웃거리는데 뜻밖의 감동에 함박웃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가 왜 그리도 반가운지. 그녀는 기계로 주고 받던 마음을 접어두고 왜 손편지를 썼을까. 아날로그의 묘미에 익숙해진 것일까. 갑자기 마음이 시린 탓일까.

겨울의 정적이 지루하다고 행복한 넋두리다. 혼곤히 동면에 든 산촌이 그녀를 나른하게 했나보다. 봄이 머지않았는데 더디 온다고 애꿎은 시간 탓을 한다. 일철이 되면 시골의 지어미들 엉덩이 땅에 붙일 새 없다더니 그래도 봄이 좋단다.

그녀가 산촌행을 결정하고 새 삶을 시작했을 때 행복한 일상을 전해왔었다. 가끔 고라니가 사립을 기웃거리고 마당에 놀다가는 새들과 도타운 사이라고. 산촌의 눈과 비는 정갈하고 포근하며 꽃잎의 때깔이 도시의 것과 견줄 수가 없단다. 아무래도 산촌의 향기는 마성을 가진 것 같아서 빠져든다고 밝게 웃었다.

아직 산촌의 일상을 배우는 중인가보다. 차향이 진하게 풍기는 카페가 생각나면 오솔길에 정들이고 까치가 짖으면 사립에 눈이 간단다. 휘황한 불빛 대신 휑한 가로등 몇 개가 그녀의 도시적인 감각을 깨우면 가슴이 뚫린 듯 시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날로그적 삶은 불편하고 외롭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허전함에 처음의 그것들이 생각나고 진짜 내 것처럼 애착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의 산촌 생활이 부럽다.

그녀는 처음을 놓아버린 지가 오래되어 잠시 어설픈 것 일 게다. 도시의 때가 벗겨지고 산바람으로 닦인 얼굴에 제 빛이 돌면 그때는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

나도 자판을 두드려 생산해 내는 기계의 소산물은 접어두고 가끔 손 글씨로 안부를 물어야겠다. 기계로 인해 무미건조해져버린 내 일상도 활기가 생길 것 같다. 호불호를 장담 못하는 그녀와 나의 일상도 손편지로 조화를 이루면 즐거워질 것이다.

손녀가 한글을 배우면서 손편지를 썼다. 사랑이란 말을 드디어 글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해요'라고 써서 우편함에 넣었다고 딸이 귀띔했다. 가슴이 없는 글자와는 차원이 달라 구불거리는 글자에서 생명감이 넘친다. 아이가 아날로그의 참맛을 배운다. 아니 우리 모두의 처음이었던 아이는 가장 순순(恂恂)한 아날로그이다. 곧 기계의 세상으로 입성하겠지만 이 느낌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기계가 진일보할 때마다 사람들의 처음인 것들이 사라진다. 기계의 반란에 한기를 느낀다. 주객이 전도되어 사람이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날로그적 삶은 뒤처지고 불편하며 때로는 외롭고 무지해 보이나 기계의 모태였으며 우리의 본질이다. 본질은 장애물에 밀려 한 걸음 물러 서 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손편지에 질화로의 따스함이 묻어 있다. 그녀가 아날로그의 묘미에 빠져들고 있나 보다. 빠름 빠름을 광고하는 기계는 잠시 내려놓고 나도 그 맛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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