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제사
  • 임도순<수필가>
  • 승인 2017.02.06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도순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표현한다. 일본인 나가타 나오꼬씨가 `한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다. KBS 아침마당에서 매주 수요일에 방영하는 프로에서 그에게 주어진 7분 동안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푹 빠지게 한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남편의 성실함에 반해서 결혼했단다. 남편이 종손에 장남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으나 그 의미를 알지 못하다가 몇 개월이 지나서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조상을 모시는 제삿날에 깨달음이 있었다. 그날 시어머니와 하루를 함께하며 본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는 말을 한다.

격식에 맞는 상차림을 빠짐없이 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려면 요리 솜씨도 있어야 하고 종류가 많아 기억력도 좋아야 한다.

제사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시중을 들어야 하고, 끝난 다음에도 설거지란 과제가 있어 새벽이 올 때까지 가사 일에 묻혀야 하는데 도와주는 가족도 없이 여태껏 혼자 해낸 어머니를 생각한다. 나오꼬는 앞으로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없었다고 하며 장손인 남편에게 일본으로 가서 살자는 말까지 했단다.

제사상에 차릴 음식을 다 만들려면 몇 날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돌아가신 날이 시작되는 시각인 자시에 지내지만 제사 용품은 제철마다 나온 농수산물 중에 상품(上品)으로 마련했다가 그날 사용한다.

제삿날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음식을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해 조상님을 대함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남편들은 제사상 차림에 어려움도 모르면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타박을 하지만 당연한 도리로 알며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제사 상차림이 어렵다. 음식을 차리는 순서와 놓는 방법이 까다로워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1열에는 술잔과 메(밥), 떡국을 놓고, 2열에는 적(炙)과 전(煎)을 놓는데, 대개 3적으로 육적(육류 적), 어적(어패류 적), 소적(두부 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린다. 3열에는 탕류, 4열에는 포와 나물 그리고 5열에는 과일을 놓는다. 음식에 따라 놓이는 위치와 방향이 정해져 있다.

상차림 준비는 더 어렵다. 제사 음식이 상에 오르기까지 조리 방법이 다르다.

종류가 많다 보니 재료 준비도 쉽지 않고 격식에 맞게 요리하기에는 오랜 경륜과 솜씨가 요구된다.

주위에 다문화 가족이 많이도 늘었다. 단일 민족의 범주를 벗어난 지 꽤 오래됐다. 외국인에 대해 편견을 두고 바라보았던 때는 옛날이야기가 됐고 지금은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본다.

조상을 모시는 문화도 중요하지만 함께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면 타협점을 찾아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즈음 제사는 짧은 세월 동안에 많이 변하긴 하였다. 상차림에 평소에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올리고 시간도 조금 늦은 저녁에 지내는 가정이 많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어렵고 힘든 부분은 배제해서라도 계속 이어져야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