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문
삶의 지문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02.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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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수필가>

주차장에는 쌓인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할 수 없이 식당가가 끝나는 지점 눈밭에 간신히 주차를 하며 조금쯤은 후회한다. 갑자기 주어진 오후의 여유에 준비 없이 훌쩍 떠나온 길. 동장군의 위세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 보다. 계곡을 돌아 나온 눈바람에 목덜미가 시리다. 목도리를 눈 밑까지 끌어올려 동여매고 발끝을 조심하며 일주문을 향해 걷는다.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잊을 만하면 마곡사에 가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입장권을 끊는데 매표소 아저씨도 묻는다. 왜 마곡사에 오느냐고. 나는 그냥 빙그레 웃었던가.

낮은 물소리가 희미하게 흐르는 계곡은 고요하다. 가끔 새들이 날아오를 때 덩달아 소시락거리는 참나무 잎새들의 수다가 추임새처럼 끼어들 뿐. 하얀 배경위에서 빛나는 빈 가지들이 간결하게 그려놓은 무채색 풍경들이 마음에 그려진 무늬들을 맑게 지워간다. 춘마곡(春麻谷)이라는 말도 있지만 겨울 마곡사를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적 드문 길을 홀로 걸으며 숲을 가르는 바람 소리에 젖다 보면 가끔은 나를 잊는다.

대개 절에 가면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갖추지만 나는 마음 내킬 때만 그렇게 한다. 그리고 사찰 주변 숲길을 걷는 것을 즐긴다.

그중 꼭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해탈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인과(因果)의 섭리로 이어져 따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서로가 하나이듯 진리도 둘이 아닌 하나이기에 해탈문을 불이(不二)문이라고도 한다.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나로 인한 결과이며 파문처럼 이는 번민도 한 뿌리이기에 집착을 내려놓게 된다.

명부전도 잊지 않는다. 가을이면 명부전 앞 단풍은 핏빛보다 붉다. 마치 영생할 듯 끊임없이 욕망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열정인 듯 처연하다. 삶 앞에서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한다.

재미있는 건 마곡사 대웅전 전각 안에는 싸리나무기둥이 여섯 개 있는 데 싸리나무기둥을 여러 번 돌수록 극락 가는 길이 가깝다고 한다.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기억하고 있는 나무기둥은 반질반질하다 못해 빛이 난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건 왠지 그 기원들이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간절함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매운바람 덕에 솔바람 길을 포기하고 내려오며 불모비림에 들른다. 사찰의 불상이나 불화를 제작하고 전각에 단청을 시공하는 이들을 불모라고 하는데 그들의 공덕을 기려 세운 것이 불모비다. 그 중 효은정연 불모비 앞에 서서 잠시 머물러본다.

보통 불화는 본에 의지해 전래되어 왔는데 도량에 맞도록 개성 있는 불화를 처음으로 시도했던 분이라고 한다.

인고의 세월 작업을 수행으로 여기며 음지에서 공덕을 쌓은 이들의 삶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섣달 스무날 산천이 모두 흰 눈으로 덮인 이른 새벽 첫닭이 홰를 칠 때'태어났다는 첫 문장에 끌려 떠듬떠듬 비문을 훑고 나니 햇살이 환하다. 양지바른 곳 꽃무릇 싹이 파랗게 햇볕을 쬐고 있다. 코끝이 시큰하다. 어려워도 그리 각각 자기 삶에 뿌리내리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일이 우리 몫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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