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에서 산을 묻다
봄 길에서 산을 묻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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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라고 했는가, 그대.

나는 문득 노래를 듣는다.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정호승의 시를 김광석이 노래한 <부치지 않은 편지>는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로 시작된다.

긴, 그리고 깊어진 한숨을 피맺힌 외침으로 토해내며 1000만이 넘는 민중의 촛불이 바다를 만나고 있음에도 그대는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으로 간단히 치부한다.

그게 설날을 앞둔 여론의 반전을 기대하거나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만들어졌으면 하는 기획이었다면 아서라,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많으며 깊어진 (국민들의) 상처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설령 설 연휴의 민심을 전체가 아니라 전체라고 가정되는, 어쩌면 실체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만 그런 것이 있다고 치자라고 호도하는 (일부)언론의 저의가 숨어 있다고 해도 이번만큼 극명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민심은 그대의 그 `커다란 산'과는 다른 견고함을 굳세게 견디고 있을 따름이다.

모처럼의 가족 간 해후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다만 늙으신 부모의 의견에 순종하듯 말을 아끼던 자식들은 더 이상 (가족 간 정치적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처를 드러냈으며, 열린 광장에서의 희열과 대한민국의 살아 있음을 강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위악과 모순과 적폐에서 벗어나 위대한 국민으로 거듭나는 길을 설파했다. 그리고 한 표 한 표의 소중함과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미래의 희망에 대한 세대 간 공감을 약속하기도 했다.

<부치지 않은 편지>는 이렇게 흐른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노래처럼 우리가 함께 입에 물고 날아가야 하는 산은, 그대의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하는 산이다.

쓰러져도 기필코 하늘을 바라보는 풀잎이 지천이고, 아름답기 어려울지라도 마침내 꽃잎 피워내는 산을 그대는 여태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설 연휴가 지나고 결국의 정유년이 찬란하게 시작됐다. 한달음에 달려가 회포를 풀고 또 헤어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태 변한 것은 별로 없고, 뜬금없는 거짓말의 산과 민주주의를 울부짖는 국정농단의 게이트에 설 민심은 차가웠고, `그런 줄도 모르고 찍어 준 내 한 표가 자식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내몰았다'는 늙은 부모의 탄식으로 어쩌면 가족끼리의 서먹함이 조금은 물러지는 정유년의 설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다짐으로 다가오는 입춘에 앞서 가슴 속까지 환한 <봄길>을 준비해야겠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다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봄길> 설 지나 입춘을 앞둔 계절. 그 봄길에서 산에게 묻는다. 산은 다만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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