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인 줄만 알았다
엄마는 엄마인 줄만 알았다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1.31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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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엄마의 얼굴이 달빛 아래 박꽃 같다. 보름 만에 보는 엄마다. 딸이 이제나저제나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나를 반기는 모습 앞에 바빴다는 핑계를 대는 내가 부끄러워 주춤거리던 변명이 속으로 숨어버린다. 자주 오지 못하는 것이 바빠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귀찮아서 미루는 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요양원에서 누워만 계시는 엄마를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을 찾아갔다. 차츰 두 번이 한 번으로 줄어든다. 다시 그 한 번은 한 달에 두 번으로 소원해진다.

처음에는 엄마가 자존감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버젓한 자식이 넷이나 있는데 요양원에 버려졌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도 했다.

이렇게 평온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과 갈등했을까.

나는 엄마는 엄마인 줄만 알았다. 한 남자의 아내. 여자로서의 개인 김복선 여사. 그런 이름은 없고 엄마라는 호칭만 있는 줄 알았다. 연약한 여자는 더더욱 아닌 줄 알았다. 무서움을 모르는, 힘들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줄 알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지으시고 신 새벽에 십리 길을 걸어 버섯공장을 다니셨다. 어둑어둑해서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준비하고 어둠길에 개울로 빨래를 나가셨다.

엄마는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래도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는 줄 알았다. 여전히 깜깜하면 무섭고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은 것임을.

아파할 새도 없고 힘들다고 주저앉을 틈도 없었던 것임을 내가 엄마가 되고서야 알았다. 엄마가 빨래하러 갈 때 따라가서 도와주지는 않아도 옆에서 쫑알거리기라도 할걸. 급한 마음에 저녁 국수를 삶는 엄마에게 먹기 싫다고 칭얼대지 말 걸 그랬다.

동네에선 엄마는 슈퍼우먼으로 통했다. 술에 젖어 사는 아버지를 대신해 4남매를 키워야 하는 책임감이 늘 종종걸음을 치게 했다. 물려 줄 재산이 없으니 자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의 억척이 모두 공무원을 만들었다.

엄마의 희생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챙기며 안주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리라.

나는 아들 하나 키우는 것도 쩔쩔매고 벅찬 숨을 내쉬는데 넷을 키운 엄마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으리라.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는다.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고는 이불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 손이 따뜻해질 때쯤 되니 그만 돌아가라고 말로서 등을 떠민다. 퇴근하면서 들른 길이니 딸이 배고플까 봐 배려함이다.

나는 이토록 밝은 엄마의 미소를 본 적이 없다. 더는 자신을 버텨온 고집도, 자존심도 소용이 없음을 안 엄마는 처지를 숙명처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더불어 자식 걱정과 염려조차도 다 놓아버렸다. 이제 순수한 어린아이로 돌아와 있다.

나는 구순이 넘은 엄마의 이 평화가 살아계시는 날까지 이어지기를, 그리하여 고통 없이 편안히 잠을 자듯이 하늘나라로 가시길 빌어보는 것이다.

`엄마, 오늘 밤도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따라 이 말이 안에서 자꾸만 걸린다. 고생만 한 한 여인의 생이 울컥 목울대를 울린다.

나를 보내는 엄마가 웃어주는데 나는 발짐이 한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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