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초
기억의 단초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01.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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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수상쩍다. 두세 번 빨래를 추슬러 돌려보아도 덜컹거리고 끼익 거리며 힘들게 돌아간다. 아무래도 교환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언제 샀지?” 되묻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은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구입했다. 그 아이가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십 년이 훌쩍 넘었나 보다.

세상의 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내 기억의 모든 단초는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아이들은 우리 가족의 변화와 추억을 떠올리고 증명하는 산증인이다. 집안의 큰살림을 바꾸고 열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나무가 나이테를 그리듯 켜켜이 많은 이야기가 아이들과 함께 쌓여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용하던 밥공기와 국 대접의 크기가 달라지고 숟가락 젓가락 길이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흔적과 숨결은 집안 곳곳에 배어들었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유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이유이며 기억의 단초가 되는 아이들을 영영 잃어버렸다면 그 심정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수돗물 소리만 들어도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고통 속에 목숨을 잃은 아이가 떠올라 차마 밥을 지어먹지 못한다는 세월호 참사 어머니들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떠나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세월호참사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가슴에도 아이들을 묻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부모들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사고가 난지 삼 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사고원인의 진실은 속 시원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아니 진실은 무능하고 사악한 위정자들의 거짓과 은폐 속에 세월호처럼 인양되지 않았다고 봐야 옳을 터였다. 그래서 더욱더 가슴에도 고이 묻지 못하고 고통스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4월, 텔레비전을 켰다 껐다 반복하며 내가 어른인 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잊지 않을게 다짐했던 기억에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진실이 침몰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우리 부부가 우리 아이들을 기억의 단초로 떠올리며 살아오는 동안 사랑하던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영원히 빼앗겨버린 세월호 참사 부모들의 시계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정지되어버린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끄럽다.

새해가 밝아오고 1월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지난해처럼 여전히 혼란스럽고 위정자들은 위선과 정의란 이름의 가면을 쓰고 또 다른 거짓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있다. 그들에게 기억의 단초가 되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울고 웃는 이 땅의 부모들이 안중에나 있을지, 아등바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가 그 아이들 때문이라는 것을 공감은 하는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그중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보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이 가슴에도 차마 아이를 묻지 못하고 고통받는 모습이, 수많은 촛불이 바라는 게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닌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것을.

그들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촛불이 곧 민심이며 천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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