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밤
눈 내린 밤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1.30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는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방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 놓은 겨울밤에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요즘 시절과는 달리 예전에는 유리창이 아니고 종이창이었으므로 더더욱 밖을 볼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면 겨울의 진객(珍客)인 눈이 밤에 내린다면, 이를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시각으론 이왕에 불가한 것으로 되었으니, 남은 것은 청각밖에 없다. 그런데 비처럼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라서 청각으로도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말을 들어보면 그 답이 나온다.

밤사이 내린 눈(雪夜)

已訝衾枕冷(이아금침랭) 이불과 베개가 차가운 게 의아하다 했더니
復見窗戶明(부견창호명) 그 위에 창문의 빛이 환하게 보이기까지 하네
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밤 깊어 눈이 무겁게 내린 걸 알게 된 것은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 가끔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들려서라네


처음부터 여느 겨울밤과는 달랐다. 겨울밤이 비록 춥더라도 보통은 펼쳐 놓은 이부자리가 차가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불과 베개에서 보통과는 다른 냉기가 느껴져서 의아한 생각이 들던 차였다.

의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깜깜했을 창문이 밝게 보였던 것이다. 이쯤 되어도 눈치를 못 챌 위인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나가서 보거나 창문을 열어 내다본 것은 아니었지만, 시인은 눈이 온 것임을 직감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부자리가 차가워진 것이며, 창문이 환하게 보였던 미스터리를 풀 열쇠는 눈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두 사안으로 시인은 눈이 왔다는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얼마나 왔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밤이 더 깊어졌을 때, 시인으로 하여금 강설(降雪)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집 뒤 대밭에서 대나무가 꺾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던 것이다.

눈이 얼마나 많이 와서 짓눌렀으면, 그 꼿꼿한 대나무가 다 꺾이게 된 것일까? 그것도 우연히 한두 개가 꺾인 것이 아니고 여러 개가 이어서 꺾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겨울에 눈이 없다면, 사람들의 겨울나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길고 외로운 겨울밤을 견디는 데는 눈 만한 것이 없다. 산이나 들에 나가서 직접 느끼는 눈도 좋겠지만, 방 안에서 간접적으로 느끼는 눈도 운치가 그에 못지않다. 차가워진 이부자리, 환해진 창문, 여기에 대나무 꺾이는 소리가 더해진다. 겨울밤 귀한 손님이 오신 것이다. 그것도 단체로.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