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간 촌닭
서울에 간 촌닭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1.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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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서울을 생각하면 촌스럽게 울렁증이 일어난다. 화려한 네온불빛에 달빛도 보이지 않는 서울, 지금도 그 밤거리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어지럽다. 우리나라의 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를 외면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촌닭이라 놀리기도 한다.

나목에 찬바람이 이는 겨울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다. 버스는 친구들과 만날 반가움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가득한 촌닭을 서울에 내려놓고는 까만 매연을 뿌리며 사라졌다. 가는 내내 버스에서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출발, 도착 그리고 만남의 장소까지 서울은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란다. 몇 번 홈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번 홈으로 나오면 바로 위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쪽지를 들고 홈에 들어서자 밀물 같은 많은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갔다. 개표구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분명 들어온 곳은 하나인데 왁자한 서울의 지하는 땅 위보다 더 여러 갈래의 길이 얽혀 있어 거미줄 위에 걸린 나비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안내 도우미로부터 승차권은 받았지만 버스처럼 표를 주고 내리는 것도 아니요, 기차처럼 출구에서 확인하는 것도 아니요, 요상한 곳에 표를 넣어야 한단다. 세상 요지경 속이라더니 서울 땅속은 미로 소굴이었다.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니고 나가는 출구가 어찌 이리도 많은지 분명 한글로 안내가 표기되어 있지만 찾을 길 없으니 수면에 떠도는 부초처럼 막막하고 표정 잃은 눈빛은 덜컹거리며 허공에 넘어진다.

무엇이 저리도 바쁜지 걸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뛰다시피 가는 행인들, 붙잡고 물어봐도 대충 대답하니 답답한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금소리 울려 퍼지는 지리산 청학동이 별천지가 아니라 내겐 이곳이 별천지였다. 진종일 지친 기색도 없이 깜박거리는 네온, 대형 광고판, 그리고 엉킨 실타래 처럼 늘어선 철로들에 스멀스멀 두통이 온다.

서울 땅속은 전쟁터이다. 총 대신 가방을 메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무전기 대신 휴대전화는 귀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웃음을 잃고 세상사 모든 고뇌를 다 짊어진 무표정한 인상들이 따뜻한 여유라곤 찾을 길이 없다. 지하철 내든 바깥세상이든 온통 `수그리족'이다. 어쩌다 말을 걸어도 적당히 건성으로 무심한 답만 돌아올 뿐 시원치가 않다.

산자락에 조락한 낙엽처럼 온기가 없는 서울표정에 서글픈 촌닭은 목이 마르다.

불타는 서울 밤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촌닭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네온불빛 거리에서 취생몽사, 밤인지 낮인지 모를 땅속에서 또 다른 세상풍경을 엿보며 각 다분한 하룻밤 사이에 더 촌스런 촌닭이 되어 있었다.

옛말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 고 했다. 어디 서울로 보내는 이유가 한둘이겠는가. 국가의 행정기관이 모여 있고 발달된 문화예술 그리고 편리한 교통의 요충지인 서울,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인적자원도 풍부하며 금융과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여 심장부의 역할을 하는 서울 아니던가. 그럼에도 고층빌딩보다 구릉진 밭의 향수가 젖어드는 건 왜일까.

별빛이 네온 속에 미끄러지는 서울을 뒤로한 촌닭은 발 빠른 문명세계 거미줄 같은 정보망 속에 오히려 그들에게 인간이 지배당하고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편리함은 정든 옛것을 앗아간다. 클릭한 번으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시대라지만 난 여전히 손 글씨가 정겹고 적요한 지리산 청학동이 그리운 촌닭이다.

*수그리족 -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를 주고받거나 콘텐츠를 접하느라 몸을 수그리고 액정 화면에 집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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