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은 일
어떤 작은 일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01.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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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루쉰(노신魯迅, 1881-1936)의 단편소설집을 우연히 읽었다. 대학원생이 빌렸는데 반납한다고 하길래 시간이 남았느냐고 확인해서 다시 빌려보게 되었다. 학생은 그 안의 삽화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검은 판화였다. 그림 넣기 전통은 서양소설에도 있는데 루쉰은 자기의 작품에 판화를 넣었다.

루쉰이 중국계몽기에 판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순한 검은 판화가 강렬하게 심상(心象)을 전달할 수 있다니 놀랍다. 예술은 복잡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광인일기'(狂人日記)에 나오는 판화는`사람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분위기를 드러내준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담는다. 작은 나를 감싸고 있는 큰 얼굴들은 식인(食人)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단편은 정말 짧다. 장편(掌篇)같다. 길 장 자 장편(長篇)이 아니고 손바닥 장 장편이다. 손바닥만한 곳에 글을 쓸 정도라는 것이니 짧아도 많이 짧다. 루쉰의 소설은 일반 단편에 비하면 그래도 짧다. 그래서 독자가 많고 중국의 현대를 이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920년대 우리 소설 가운데 루쉰 소설처럼 짧은 것은 많지 않다. 염상섭의 `삼대'와 같이 긴 것이 많다. 질곡의 시간이 우리만 긴 것이 아닌데, 루쉰보다 짧게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다. 아니, 우리도 짧게 표현할 줄 알았다. 다만, 농이 없었다. 아주 슬퍼서 웃기는, 정말 어쩔 수 없어 웃는 줄거리가 많지 않다. 주자학 탓일 것이다. 웃어서는 안 되는 조선의 문화 말이다. 기껏해야 `운수좋은 날'을 쓴 현진건이 그럴까.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하고 끼니도 걸은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운수 좋은 날, 그는 술 한 잔을 먹고 기분 좋게 집에 가지만, 병석의 아내는 눈을 홉뜨고 죽었고 아이는 죽은 어미의 마른 젖을 빨고 있다. 정말로 운수대통(?)한 날이다. 루쉰이 창조한 `아Q정전'의 아Q에게 놓인 현실처럼 자기위로의 술 한 잔으로, 마누라에게 가져다줄 설렁탕 한 사발로 운명은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소설집에 아주 짧은 작품 `어떤 작은 일'(一件小事)이 있다. 주인공이 인력거를 타고 가는데 고의로 넘어진 것 같은 노파를 성의껏 경찰서로 모시고간 인력거꾼을 보면서, 자신은 작아지고 그는 크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자해 사고처럼 노인의 행동을 소설 속의 나는 보았지만, 하찮은 인력거꾼은 선입견이나 섣부른 판단 없이 노인을 정성을 다해 모셨다는 사실이 너무도 창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경찰에게 동전을 그에게 건네주라면서 도망쳐 나오듯 빠져왔다는 이야기다.

나는 강의에 대한 대가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 대학 내 기관의 한 전문가는 교내학생들과 관련되어서는 돈을 받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단다. 비교해보니, 돈을 주어야 가르치는 나는 그 전문가보다 못하다. `어떤 작은 일' 속의 `나'처럼 나는 작고, 교내의 전문가는 `어떤 작은 일' 속의 `인력거꾼'보다 크다. 루쉰이 그 인력거꾼의 등이 자꾸만 크게 보이던 것과 같다. 도덕은 철학자가 아니라 인력거꾼이 가르쳐야 하나보다. 특히 어떤 작은 일에서는 말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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