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설’ 저런 ‘설’
이런 ‘설’ 저런 ‘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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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거리가 광장이 되고, 그 광장이 다시 촛불의 바다가 되는 사람들의 힘을 보면서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겨울.

촛불이 켜진 이후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늦은 가을부터 엄동설한으로, 또 세밑에서 해를 바꿔 2017년을 맞이하도록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로 맞이하는 설날, 나는 이런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맨 먼저 가족들이 모이는 설 연휴에는 대선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함부로 가볍게 훑어대는 뉴스 대신, 낯설지만 분명한 우리 이웃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훈훈함이 전달되는 미디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졌던 학벌과 지위, 재력에 대한 동경심과 권력의 강함이 사실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것임을 만끽하는 설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광장에서 촛불로 서로를 위안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서로의 힘든 이야기를 보듬었던 기억 또한 모처럼 만나는 가족과 친지에게로 주저 없이 나누어지는 그런 설날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저녁 시간 가족들이 모여 앉은 텔레비전에는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홀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의 예능 프로그램 대신, 서로의 슬기와 힘을 모아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에 빠지는 함께의 즐거움이 가득한 버라이어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온갖 불의와 타협하며 `우리'가 아닌 `나'를 살찌우던 기득권 세력의 탐욕을 차분하게 벗겨 내던 촛불의 힘처럼, 나라와 민족에 앞서 작은 이웃과 사회의 건강함을 걱정하는 설날의 이야기가 넘쳐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에게도 메릴 스트립의 골든 글로브 시상식장의 소감은 고스란히 절절합니다. “힘을 지닌 이가 공개석상에서 누군가에게 창피를 주고자 하는 본능을 보이면, 그건 다른 모두의 삶에 침투합니다. 그건 다른 이들에게 `이래도 된다'는 허가를 내주는 거나 다름없거든요.”라는 그녀의 말은 절실합니다.

마치 약속된 듯이 툭하면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가 본질을 호도할 수 있음은, 그런 호기심이 대중의 무의식을 파고들면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국정의 난맥조차 무색하게 만들 수 있음을 말하는 메릴 스트립의 참뜻을 깨우치는 설 연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리하여 난공불락 같은 세대 간의 단절이 무너지면서, 과거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 대신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공통의 대화가 꽃을 피울 수 있는 고향 길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광장의 촛불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치열하고 고단했던, 그리하여 홀로 세상과 싸워나갈 수밖에 없겠다는 외로움을 떨쳐내는 `우리'를 배웠습니다.

이번 설에는 누구도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서로가 함께하는 관계와 우뚝 서 있는 스스로의 존재감으로, 단절되고 서먹했던 `사이'를 허물어버리는 만남의 신선한 새로움을 만드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이지 이번 설에는 `전쟁위기'이거나, `종북'또는 `철모름'이라는 이분법과 업신여김 대신 촛불 광장의 슬기와 거기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한 국민의 당당함이 공동체로 승화되는 이야기꽃의 향기가 그득하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리하여 촛불은 짧아지고, 또 서로에게 위안이 되며 힘이 되는 당당함으로 우리의 어깨가 듬직해지면서 모두에게 힘이 되는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만끽하는 설 연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 올려주셨다.' <김종해, 어머니와 설날 中>과 같은 찬란한 설날이 다가옵니다. 고향으로 함께 가는 촛불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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