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좀머 씨 이야기
  • 이지수<청주중앙초 사서교사>
  • 승인 2017.01.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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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지금이다. 상대방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혹은 혼자가 편해서 사회 시스템 속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에 대한 말일 텐데, 기존의 틀에 익숙한 나는 씁쓸한 감을 없애기 쉽지 않은 단어다.

책 속에 그려진 좀머 씨는 검은색 바지와 긴 외투를 입고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든 혼밥, 혼술, 혼산책, 혼대화족이다. 그가 왜 사람들을 피하고 도망치듯 쉼 없이 걷고 아무 나무 밑에서 경계하며 쫓기듯 식사를 하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 그를 그냥 미치광이나 주인공의 부모님처럼 밀폐 공포증이라는 병명으로 단정 짓는 것이 더 빠르고 간편하다. `소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만이 좀머 씨는 그냥 내가 나무타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밖을 걸어다닐 뿐이라는 단정을 내놓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속을 왱왱거리며 떠도는 문장이 있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우박이 쏟아지던 날 그러다 죽겠어요, 라며 좀머 씨를 차에 태워주려 하자 그가 외쳤던 말,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두시오!”였다. 이 장면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좀머 씨의 괴팍한 성격을 탓할 수도 있겠다. 주인공의 아버지 스스로도 밝혔듯 그가 내뱉은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쓸데없는 축에 드는 말이다. 그 말을 뱉은 당사자도 그걸 알면서도 피드백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해 나쁜 평을 내놓는다. `좀머 씨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이해하기에 개개인의 시선과 섣부른 판단들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들인지 자각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당사자 역시 구태여 이해받을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관한 전반적인 느낌은`무거움'이다. 비교적 얇은 두께에 작은 크기의 책이지만, 다뤄진 내용은 쉽지 않다. 주인공 소년 역시 히스테릭한 분노조절장애인 피아노 선생, 체형에 맞지 않아 우스꽝스럽게 타야 하는 자전거, 치기 어려운 작곡가의 곡들, 짖으며 달려드는 개들로 인해 나무 위에서의 자살을 실행 직전까지 옮긴다. 뛰어내리기 직전 그 순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무 밑에 찾아든 좀머 씨로 인해, 그의 죽음은 다시 삶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나무 밑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빵을 먹고 서둘러 물을 먹고 그 자리를 피하는 좀머 씨는 책의 말미에 그 스스로 호수로 걸어 들어가며 바쁘고 부단히도 고달팠을 생을 마감한다.

삶과 죽음, 자살 충동, 현실 부적응자, 다수의 무관심, 죽음 이후의 반응들…. 생이 끝난 이후에 오랫동안 나를 기억해줄 것이라 믿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그냥 끝일뿐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때론 소년의 예민한 감성으로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을 일깨운다. 좀머 씨의 마지막을 목격했을 그가 끝끝내 좀머 아저씨의 행방에 대해 침묵하는 장면은 `나를 좀 제발 그냥 두시오!'를 바란 좀머 아저씨를 위한 어른들보다 나은 소년 나름의 배려가 그렇다.

가수는 자신의 노랫말대로 생을 살고, 작가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삶을 그 작품에 담기 마련인가 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열린책들)'도 마찬가지다. 좀머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성 없이 무작정 걷는 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세상과 단절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실제로 작가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것이 기인의 삶이랄지, 온전한 내적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랄지. 책 속의 `나를 좀 제발 그냥 두시오!'는 주변에 내뱉는 작가 자신의 절규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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