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다짐
아버지의 다짐
  • 신금철<수필가>
  • 승인 2017.01.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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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의 행렬이 전처럼 신비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조류독감으로 수많은 닭과 오리가 폐사되었고, 혹시나 인체에 전염될까 야생 조류에도 경계심이 인다. 달걀이 품귀 현상을 보여 값이 오르자, 드디어 미국 달걀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닭과 오리를 키우던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도 편치 못하다. 식생활을 위협하는 물가 상승은 서민들을 긴장시키고 어려운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부츠를 산지 오래되어 모처럼 구두약도 바르고, 굽도 갈기 위해 구두 수선 집에 들렀다.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다. 한 평 남짓한 구두 수선 집은 냉기가 돌았다. 오래된 듯 보이는 석유난로는 꺼져 있었다. 아마도 손님이 없을 때는 석유를 아끼느라 켜지 않다가 내가 들어서자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 같았다. 가끔 들르는 집인데 아저씨는 정성을 다해 구두 수선을 해주신다. 그날도 추운 날씨에 손에 약을 묻혀 구두 손질을 하고 수선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 구형 텔레비전에서는 국정조사청문회의 장면이 나오고 증인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때 기세등등하고 권력을 휘둘렀던 지체 높은 분이 모든 정황들을 모르쇠로 일관하여 질문자가 고성을 지르는데도 증인은 일관된 답을 반복하여 이를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답답하였다.

그때 미닫이 창문 위에 써 붙인 글귀가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아버지의 다짐'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못 되더라도 부끄러운 아버지는 되지 말자'

글귀를 읽는 순간 텔레비전 속의 권세를 휘두르던 주인공과 대비되어 열심히 구두 수선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자랑스러운 아버지보다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존경받기 위해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참모습을 보았다. 내가 본 모습의 일부가 그분을 평가하기에 객관적이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런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분이라면 성실하고 모범적인 가장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권세와 부를 지녔다고 모두 자랑스러운 부모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법을 어겼다는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이는 아버지보다, 구두를 수선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자랑스러운 아버지임엔 모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아저씨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구두 수선을 마치고 아저씨에게 “아저씨가 이 화면에 나오는 분보다 아드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존경받으실 거예요.”

칭찬과 감사의 인사에 아저씨는 모든 부모들의 당연한 생각이 아니냐고 웃음으로 대답하셨다.

정성들여 수선해준 구두를 신을 때마다 `아버지의 다짐'은 나에게도 `나의 다짐'으로 바뀌어 기억되고 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더욱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준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부모와 함께 촛불 행렬에 나선 젊은이들과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경제, 정치, 안보가 불안한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정유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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